3

 

다른 곳에 비해 바라나시에 대한 정보는 비교적 얻기 쉽다. 그만큼 많은 여행자들이 머물고 가는 곳이다. 꽤 많은 사람들에 의해 검증된 라씨가게를 찾아 골목들을 헤맸다. 심심치 않게 한글로 된 간판들도 보였다. 마침내 블루라시 숍이라고 쓰인 간판을 찾았다. 사장님이 쌍시옷 쓰는 법을 잘 모르셨나보다. 화살표를 따라 작은 골목에 들어섰다. ‘블루 라씨에 도착했다. 파란색 문과 벽의 허름한 가게였다. 콧수염을 깔끔하게 기른 아저씨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라씨를 만들고 있었다. 좁은 내부에는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인구밀도를 높이고 있었다. 벽을 바라보는 자리에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이제 주문을 어떻게 해야 되나 두리번거리고 있었더니 옆에 앉아있던 외국인이 메뉴판을 넘겨주었다. 플레인부터 각종 과일 라씨가 있었다. 직원을 불러 블루베리 라씨를 주문하고 지폐를 건넸다. 벽에는 낙서된 종이와 온갖 인종의 여권사진들이 빽빽이 붙어있었다. 찬찬히 보면서 사진을 찍다보니 직원이 주문한 블루베리 라씨와 거스름돈을 주었다. 글로만 보던 라씨가 눈앞에 나타났다. 라씨란 요거트를 말한다. 아무리 부유해도 뚜껑은 핥는다는 그 떠먹는 요거트. 황토색 그릇에 담긴 연보라색 요거트 중앙에는 흰 색의 덩어리가 섬처럼 떠있었고, 잘게 자른 푸른 잎들이 뿌려져있었다. 한쪽에는 예전에 떠먹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따로 카운터에서 챙겨야 했던 나무숟가락이 푹 담겨있었다. 한 입을 입에 넣었다. 평범한 블루베리 맛인데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흰 색 덩어리는 고소하기도 하면서 텁텁하기도 한 맛이 났다. 찾아보니 커드였다. 우유에 산을 더했을 때 응고된다는 커드는 치즈와 버터 두 가지 느낌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뿌려져있는 작은 잎들도 나쁘지 않은 향을 가지고 있었다. 방금 전에 진짜 과일을 넣어서 만든 요거트를 먹는다는 느낌까지 더해져서 숟가락을 놓고 막걸리 마시듯 후루룩 입에 부었다. 인도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좀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중력을 이용하여 남은 라씨의 흔적들을 한 곳에 모으고 있는데 갑자기 그릇이 눈에 들어왔다. 눈높이를 맞추니 그 그릇은 흙으로 만든 질그릇이었다. 가게의 오래된 전통을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로 엔틱한 느낌의 그릇을 사용하는 건지, 아니면 원래 이 그릇을 사용하는 건지 조금 긴가민가했다. 바라나시에 있는 동안 이곳에는 자주 와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그릇을 반납하기 위해 들고 문으로 나섰다. 문 앞에 서서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난 그릇을 한 번, 직원의 눈을 한 번 바라봤다. 직원이 집게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그 곳 바닥에 위치한 쓰레기통에는 질그릇들이 부서져있었다. 그랬다. 이 흙으로 만든 그릇은 일회용 그릇이었다. 마치 우리나라 카페 쓰레기통에 가득 찬 테이크아웃용 컵처럼 질그릇조각들이 가득 있었다. 얘네 들은 그래도 수백 년 동안 땅속에서 썩지 않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며칠이지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느꼈던 점이 있었다. 이곳은 공산품이 비싸다. 아마도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사람이 만든 물건들보다 오히려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이 비싼 것 일거다. 라씨를 먹고 나오는 손님들이 능숙하게 쓰레기통으로 그릇들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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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낭을 메고 바라나시의 복잡한 골목길을 걷다보면 다양한 호객꾼들이 말을 건다. 무시하는 게 보통이지만, 나는 아주 가까우며 깨끗하고 갠지스 강이 보인다는 호스텔을 소개해주겠다는 노인을 따라 걸었다. 그 가깝다는 호스텔에 언제 도착하냐는 물음에 조금만 더라는 대답을 몇 번 들었을 때쯤, 실을 풀어놓거나 빵을 조금씩 뜯어서 바닥에 떨어트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솟아났다. 이정도면 납치가 아닐까 의심이 들 때쯤 숙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로비깨끗했고, 당연히 싼 방에서는 강이 보이지 않았다. 강쯤이야 나가서 보면 되기 때문에 창문 없는 가장 저렴한 방을 택해 짐을 풀었다. 자물쇠로 단단히 문을 봉인한 후 숙소를 나섰다. 최대한 직진을 하는 방향으로 온 정신을 집중하여 가는 길을 기억해뒀다.

마침내 도착한 가트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주변 파악을 한 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눈앞엔 강 위에 배를 타고 흘러가는 사람들, 연 날리는 연습하는 꼬맹이, 주전자를 들고 다니며 짜이를 파는 소년, 나처럼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여행객, 액세서리를 펼쳐놓고 손님이 관심을 보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하나같이 바빠 보이지 않았다. 조그만 백팩을 배게 삼아 누웠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스포츠타월로 얼굴을 덮었다. 분명 3인칭으로 관찰하면 여유로운 장면이었을 텐데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고 신성하다는 갠지스 강을 바라봤다. 내가 알아본 바, 많은 인도사람들은 죽어서 화장을 한 후 갠지스강에 뿌려지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래서 화장터가 있는 가트들이 많다. 불을 피우는 데에 쓰이는 나무도 등급이 있어서 가난한 어떤 사람은 미쳐 다 태우지 못한 시신을 그대로 강으로 띄워 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화장터에 가면 가난한 사람을 위해 나무 값을 내달라는 요구를 받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삶이나 그들의 신에 대해 알려고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느끼는 이 강의 신성함에 동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죽음이 침잠한 그 강이 단순한 상류에서 하류를 향하는 물의 흐름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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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글자 한 글자 찾아가며 검색창을 채웠다. rooftop. 화면이 서서히 바뀌며 뜻이 나온다. 옥상. 무지의 대가, 또는 최저가에 눈이 멀었나보다. 호스텔 직원이 안내해주는 옥상의 1인용 텐트에 짐을 풀기는 했으나 마음이 언짢았다. 옥상에는 텐트 네 개와 공용 샤워실과 공용 화장실, 빨랫줄, 라커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내 텐트였고, 다른 텐트는 주인이 없었다. 다시는 앱으로 예약하지 않는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프론트에서 예약했던 2박을 1박으로 바꾸고 나니 이깟 실수쯤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커룸에 자물쇠를 채워두고 가벼운 차림으로 밖에 나왔다.

바라나시. 인도에 오는 거의 모든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신성한 물줄기 갠지스강이 흐르는 곳. 지나가는 오토릭샤를 세워 가까운 가트로 가자고 했다. 가트는 계단을 의미한다고 한다. 시커먼 매연 사이를 지나서 어떤 골목길에서 내려진 나는 그 골목 끝으로 걸었다. 건물이 끝나는 곳 저 아래에 계단도 보였고 물도 보였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이 실망감은 내가 갠지스강에서 어떤 영험함이나 신비로움을 느끼기를 바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출처를 모를 흰 배설물들을 조심히 피하며 계단을 내려오니 탁하게 흐르는 물이 가까워졌다. 주변에는 몇 몇 사람들만 보였다. 잠시 계단에 앉아 물을 물끄러미 바라봤지만 많은 사람들이 느꼈다는 뭔가가 느껴지지 않았다. 시야를 좀 더 멀게 집중하니 강의 상류 쪽에 북적거리는 움직임이 있음을 발견했다. 꽤 멀어 보였지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었으니까. 비쩍 마르고 수염을 기른 수행자, 그야말로 멋쟁이인 카메라를 든 노년의 서양 할아버지를 지나치고 자유롭게 거니는 소들과 그들의 흔적을 피해가며 계속 걸었다. 길은 이어져 있었지만 얼마쯤 걸으면 계단의 시작쯤에 새로운 가트의 이름들이 적혀있었다. 몇 개의 가트들을 지나니 점점 사람도 동물도 똥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크리켓을 하고 있었다. 앉아서 구경을 하다 보니 여러 상인들이 접선을 시도했다. 엽서나 빈디-힌두교 여자들이 이마에 붙이는 스티커 등이었다. 그들을 보내고 나는 계속 상류 쪽으로 걸었다.

얼굴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신체에 무언가를 감거나 겹쳐 입은 소년이 나를 부르더니 들고 있던 바구니 뚜껑을 열었다. 혀를 날름거리는 코브라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나는 그만 욕을 하고 말았다. 소년은 웃으며 만져보라고 내 손을 잡으려 했다. 난 강하게 저항했고 소년은 괜찮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뱀의 대가리를 쓰다듬기도 하다가 톡톡 치기도 했다. 코브라가 담긴 바구니에는 지폐도 몇 장 함께 담겨있었다. 흔한 경험이 아니기에 남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영어를 못하는 소년에게 나는 만지지는 못하지만 사진을 찍겠다며 얼마의 돈을 주었다. 돈을 주고 사진을 찍는다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아서 한 장 대충 찍고는 인사를 하고 발길을 돌렸다. 바닥에서 피리를 부는 아저씨가 보였다. 피리를 어지럽게 빙빙 돌려가며 부르고 있었고, 그 피리가 향하는 곳에는 코브라가 한 마리 앉아있었다. 몇 분 동안의 관찰로 나는 깨달았다. 피리를 불면 코브라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코브라가 움직일 때 피리를 불어야 한다는 것을.

대개의 소년들이 그렇듯 피부가 까무잡잡한 소년이 보온통을 들고 내 앞에 섰다. 그리고는 어렸을 적에 동내 상갓집에서 종종 봤던 주름지고 얇은 플라스틱 소주잔에 짜이를 따라서 내게 내밀었다. 마치 주문이라도 한 것처럼 잔을 받아들었다. 얼마냐는 질문에 소년은 10루피를 달라고 했다. 지갑엔 100루피 짜리 지폐를 빼면 동전으로 8루피밖에 없었다. 거스름돈이 없다는 소년에게 ‘8루피에 팔래, 네가 마실래?’ 라고 했다. 물론 장난이었지만 조금 폭력적인 질문에 소년은 당연히 8루피를 택했다.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이거 한국 커피라며 가방에 있던 믹스커피를 꺼내 소년에게 주었다. 소년은 내게 굿맨이라며 해맑은 미소를 보내며 손을 흔들며 보온통을 들고 갔다. 우리나라 몇몇 카페에서도 파는 차이 티 라떼가 이 짜이이다. 내가 굳이 차이라고 하지 않고 짜이라고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주 부르는 이름이었던 짜장면이 표준어가 된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우리나라의 세탁-’이나, ‘찹쌀떡-’아저씨의 특유의 외침처럼 골목 곳곳에서, 심지어 열차 안에서도 일정한 톤으로 짜이-’하는 소리들이 자주 들리기 때문이다. 짜이는 인도의 국민음료다. 많은 사람들이 믹스커피를 마시듯 인도 사람들은 수시로 짜이를 마신다. 밀크티에 설탕 듬뿍 넣고 향신료를 넣은 따뜻한 차다. 생강 향이 났다. 들쩍지근한 맛이 입에 도니 배가 고파졌다.

식당을 찾아서 가트 위로 올라가다가 간판에 익숙한 단어가 보였다. rooftop restaurant. 당장 올라갔다. 비어있는 강이 보이는 테이블에 앉았다. 강이 보이는 식당이라 그런지 메뉴판의 가격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양고기 볶음밥과 콜라를 주문했다. 나의 짧은 팔을 보완해줄 수 있는 최첨단 장비인 셀카봉을 꺼내어 길게 뽑았다. 젊은 외국인 커플과 노년의 외국인 커플이 내게, 정확하게 말하자면 셀카봉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이것이 무슨 물건인지 시범을 보이며 설명했다. 몇 개 더 가지고 왔으면 분명 좋은 가격에 팔았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연신 굉장하다며 눈을 반짝이는 그들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자기는 필요 없다며 셀카봉을 던져준 동생에게 짧은 고마움이 들었다.

그날 밤 비가 왔다. 후두둑 소리에 놀라서 잠에서 깼다. 낯설고 낮고 좁은 천장에 또 한 번 놀랐다. 루프탑과 텐트라는 단어 두 개가 떠올랐다. 이내 혹시 짐이 빗물에 젖을까 걱정이 들었다. 짐들을 잘 정리해두고 과연 이 텐트는 방수일까 걱정을 하며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린 아침에는 간밤에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강하게 내리 쬐였다. 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내 빨래들만이 어젯밤 날씨를 기억하고 있었다. 건너편 지붕에서는 원숭이들이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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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기차표에 의하면 뉴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는 열 두 시간 정도 걸린다. 충분히 잤음에도 세 시간은 눈을 뜬 채로 누워있어야 했다. 도대체 종점쯤 가면 이 열차는 몇 시간이나 연착이 되는 걸까. 휴대폰의 데이터를 표시하는 부분에는 3G도 와이파이 표시도 아닌 ‘E’ 라는 문자가 나타나있었다. 시간을 보내는 데에는 인터넷만한 것이 없었기에 포털을 열었지만 다음 화면을 기다리는 수고에 지쳐 수첩과 펜을 꺼냈다. 쓰다 말기를 반복한 흔적을 넘겨 새 종이에 줄마다 1월부터 12월까지 채워 넣었다. 습관이다. 그 해의 남은 월을 적고, 그 달의 남은 날짜를 적고 무엇이든지 채워 넣으려고 한다. 당분간 앞으로의 일에 생각하지 말자던 출발할 때의 생각이 떠올라 종이를 다시 넘긴다. 인도에 있는 동안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보기로 한다. 딱히 떠오르지 않다가 한 줄만이 적힌다. ‘하고 싶은 일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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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난 거의 모든 일에 약속된 시간보다 일찍 가서 기다리는 편이다. 정해진 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싫어한다. 그렇기에 2035분에 출발하는 바라나시행 기차를 위해 한 시간 일찍 뉴델리역에 들어섰다. 처음 타는 기차이기에 절대 실수하지 않아야겠다는 일념으로 플랫폼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들어오고 나가는 열차들을 보며 길이가 어마어마하게 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물칸처럼 보였던 열차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가 다시 우르르 들어가는 것을 구경했다. 전광판의 힌디어가 영어로 바뀌는 순간마다 내 위치가 맞는지 여러 번 확인하며 한참을 헤맨 끝에 내가 탈 자리 앞에 왔다. 이미 앉을 자리는 찾을 수 없어서 적당한 자리에 배낭을 내려놓고 털썩 앉았다. 음악을 들으며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불안해서 이어폰을 귀에서 빼놓고 혹시 다른 쪽으로 열차가 들어오지 않을까 시각과 청각을 총 동원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 앞을 지나가며 바닥에 세워진 조형물마냥 우두커니 앉아있는 나를 구경하며 지나갔다. 그렇게 시각은 9시를 지나고 있었다. 선배 여행자들이 남긴 인도의 흔한 연착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다시 일어나 배낭을 메고 전광판을 확인하러 갔다. 뻔뻔하게도 전광판은 세 시간 후에 열차가 도착함을 알리고 있었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춥고 졸리기 시작했다. 끌어안고 있던 배낭에서 긴 옷을 꺼내서 한 겹 더 겹쳐 입고는 겨울잠을 자는 곰 마냥 신진대사를 늦추고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벽에 기댄 채로 한국에서 담아온 소설책을 보기 시작했다. 결국 예정 시간보다 네 시간 늦게 열차가 도착했을 때 눈물을 동반한 수십 번의 하품 탓에 눈이 따가웠다. 로또를 구입한 토요일 저녁의 마음처럼 왼손에 들고 있는 기차표에 적힌 번호와 눈앞에 덜컹거리며 들어오는 객차 번호가 맞기를 간절히 바랬다. 한없이 지나만 가던 기차가 드디어 멈추고 나는 열차번호를 수십 번 확인하기를 반복하며 다른 사람들 틈에서 자연스러운 척 열차로 들어섰다. 처음 타는 인도 기차이며, 처음 타는 침대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이곳은 춥고 소란스러운 바깥과 반대로 따뜻하고 조용했다. 몇몇은 자고 있었고, 몇몇은 수다를 떨고 있었다. 기호의 위대함을 새삼 느꼈다. 정렬된 번호를 보고 내 자리를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찾아올 수 있었다. 기차표에는 'UB'라고 쓰여 있었다. 자리에 오자마자 궁금증이 풀렸다. 분명 Up BedUB. 파란색 침대-사실은 판에 더 가까운-가 아래에 하나, 위에 하나 있었다. 나는 위쪽 침대에 배낭을 올려놓고 신고 있던 슬리퍼도 올렸다. 그리고는 맨발로 2층에 위치한 내 자리에 올라왔다. 가까운 천장 탓에 앉기보다 눕기를 택했다. 배낭의 짐을 한 쪽으로 몰아서 낮춘 후, 그것을 베고 누웠다. 잠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나였기에 도난에 대한 불안감에 배낭을 안전끈으로 열차와 고정 시켰다. 열차가 출발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열차표 검사와 하얀 침구를 받았다. 의외의 서비스에 기분이 좋았다. 얇은 모포를 덮었다. 열차의 불규칙한 덜컹거림과 눈앞의 전구와 전혀 관계없이 여전히 나는 벽과 천장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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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 달간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활한 데이터의 공급이 중요하다. 3G데이터를 어디에서나 쓸 수 있으려면 유심카드를 개통해서 데이터를 충전해서 사용해야 했다. 유심카드를 구입할 수 있다는 한식당에 왔다. 약간 구석진 곳에 있었지만 이곳은 어차피 필요에 의해 오는 가게이기 때문에 영업과 가게 위치는 큰 영향이 없을 것 같았다. 메뉴에는 벌써부터 반가운 여러 한국 음식들이 나를 유혹했다. 사진 따위는 없었지만 글자만 봐도 비주얼과 맛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풀은 돈 주고 사먹을 가치가 없다는 평소의 굳은 신념에 따라 제육볶음을 시켰다. 벽에 붙어있는 인도 지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책장에는 여행자들이 두고 갔을 여러 가이드북들과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소설을 비롯한 몇 권의 책이 있었다. 다른 자리에는 어려보이는 남자 두 명이 밥을 먹고 있었고, 주인아저씨는 어느 젊은 여자 여행객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을 들려서 정보를 얻고, 잃어버린 입맛을 얻기도 할 거다. 주인아저씨는 무슨 계기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을까. 금세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김치도 나왔다. 제육볶음과 맛이 매우 비슷한 그것을 먹으면서 주파수는 그들의 대화에 맞춰졌다. 펑퍼짐한 인도바지에 슬리퍼, 팔목에는 팔찌, 발목에는 발찌를 한 젊은 여자는 앞으로 여행을 갈 도시에 대해 팁을 이것저것 얻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에 나오는 중요한 단어 대부분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난 그냥 고기를 씹으며 생기 넘치는 그 여자만 구경하고 있었다. 밥을 먹고 계산을 한 후에 유심카드를 만들러 왔다고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여권과 돈만 주면 됐으니까. 몇 시간 후면 문자 메시지가 올 거라는 주인아저씨의 당부를 받고 식당에서 나왔다. 비밀접선을 마친 사람처럼 조용하고 낡은 건물을 빠져나왔다. 사람들이 벽에 오줌을 갈겨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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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곳에 며칠 머물다보니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왈라라는 단어가 뒤에 붙으면 그 부분에 종사하는 직업을 뜻하는 말이 된다. 우리나라의 장이와 비슷한 느낌이다. 릭샤왈라와의 치열한 가격협상 끝에 코넛플레이스에 내렸다. 그리고 한 친구를 만났다. 그는 쪼그려 앉아서 구글맵을 열심히 보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유 자팡? , 아임 코리안. 그새 어느 정도는 거부감 없이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왜소한 몸짓에 로스팅 된 커피콩 정도의 짙은 갈색 피부를 가진 인도인 친구는 일본인 친구가 하나, 한국인 친구가 둘 있었다. 그 중 두 번째 한국인 친구는 나라고 했다. 왠지 엮이기 싫은 농도 짙은 붙임성에 난 알레그레토로 걷기 시작했고, 그는 나를 따라오며 여긴 무엇 하러 왔냐고 물었다. 데면데면하게 굴며 그냥 구경하러 왔다니까 자기가 싼 마켓을 안다고 따라오라고 했다. 덧붙여 그는 자신은 그냥 영어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좋으며, 돈을 달라고도, 뭘 사라고도 안한다고 했다. 어차피 목적 없이 구경 온 것인데 어디면 어떻겠냐는 마음에 그를 따라 나섰다. 그는 걸으며 짧은 힌디어 강의를 해줬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꺼져. 가장 쓸모 있는 세 가지 말을 전수받은 뒤 난 그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말았다. 선선한 날씨임에도 땀이 조금 나기 시작했다. 20분은 족히 걸은 것 같았고, 이미 코넛플레이스를 벗어난 지 한참이었다. 나의 힌디어 스승을 버리고 다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계속 그를 믿고 따라갈 것인가. 고민되었다. 잠시 시간을 벌고자 그에게 담배 피우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에 담배를 꺼내 한 개비 물고, 한 개비는 그에게 줬다. 그는 인도에는 이런 담배 안판다고, 향이 좋다고 했다. 한국 담배를 연신 칭찬하는 그에게 이거 일본 꺼야.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한 갑에서 나온 담배를 같이 피우니 우리는 더욱 돈독해져 있었다. 그가 나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었다. 나는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고 대답했고, 그는 취미가 크리켓이라고 했다. 힌디영화 본 게 있냐고 묻는 그에게 세 얼간이를 재밌게 봤다고 말하자, 자기도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갑자기 번뜩 떠오른 오랫동안 궁금해오던 것을 그에게 물었다. 왜 인도 영화에는 중간에 꼭 음악하고 춤이 나오는 건지. 그는 대부분 인도인이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좋은 영화는 좋은 춤과 음악이 나온단다. 세 얼간이에서 춤만 추면 진저리치며 얼른 장면을 넘겼던 나의 과거가 스쳤다. 거의 다왔다는 말을 한 세 번 정도 듣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베리 빅 마켓이라던 삼 층짜리 건물을 보았다. 담배도 나눠 피우고 힌디어도 가르쳐주던 그와의 유대감이 감소했다. 그를 보자 가게 앞에 있던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제자리를 잡았다. 그렇다. 나의 입장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라고 나에게 묻는 직원의 모습이 상상되어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친구를 불렀다. 아까 배운 '꺼져'가 입가에 맴돌았지만 간신히 참고 원래 계획대로 코넛플레이스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정색하는 나를 보고 살짝 얼굴이 굳은 친구는 굳이 나를 배웅하겠다며 나를 안내하려 했다. 왔던 길로 돌아가다가 갑자기 다른 길로 가기에 거기가 아니라 이쪽이라고 했더니 어설프게 '아 맞다.' 하는 전 친구를 보자 살짝 화가 났다. 마지막으로 담배 하나씩 나눠 피우고 '너는 네 일 해. 난 가서 혼자 구경할게.' 하고 헤어졌다. 혼자 돌아가는 길은 더욱 멀게 느껴졌다. 코넛플레이스에 드디어 돌아왔을 때, 어떤 아저씨 한 명이 다가왔다. 그리고 다짜고짜 프렌드라고 했다. 그 이후에 하는 말은 역시 전 친구와 똑같은 멘트였다. 방금 너랑 똑같은 말 하는 친구랑 이미 갔다 왔다고 했다. 왠지 웃겼다. 나는 웃었다. 그도 웃었다.

코넛플레이스. 사람들의 경험담을 종합하면 굉장한 번화가인 듯 했다. 이미 어둑해진 하늘에서 그곳만 밝았다. 내가 서울에서 본 그 하늘이었다. 많은 빛 때문에 별이 보이지 않는 하늘. 조금 걸으니 눈앞에는 거대한 건물들이 블록별로 줄지어있었다. 소가 없었다. 바닥은 깨끗했고, 사람들의 복장조차 전혀 달랐다. 개도 없었다. 내가 아는 브랜드, 모르는 브랜드가 간판을 반짝였다. 각종 패스트푸드가게들이 있었다. 딱히 뭔가를 살 생각도, 살 필요도 없었기에 쭉 걸었다. 그러다가 익숙하고 반가운 간판을 발견했다. 입구에서는 경비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금속 탐지기 비슷한 걸 들고 입장하는 사람들을 검색했다. 커피 마시러 가는 사람들한테 저게 뭐하는 짓이지 생각이 들었다. 난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한국에 비해 저렴한 가격이었다. 나라별로 스타벅스 컵을 사 모으는 친구가 떠올랐지만 이내 잊었다. 2층의 화장실은 내 숙소보다 깨끗했다. 남은 자리가 몇 개 되지 않아서 나는 서양 부부가 마주앉은 자리 옆에 앉았다. 교수라는 할아버지와 간단한 대화를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너무 빠르게 진행된 현지화 탓에 나는 이곳에서 가장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이었다. 직원이 부르는 주문서에 적은 내 닉네임을 듣고 커피를 받아왔다. 영수증을 보며 가계부 역할을 하는 메모장에 가격을 적었다. 오렌지 10킬로 가격이 넘었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빠하르간지에서는 1킬로그램에 30루피 달라는 오렌지를 20루피로 깎았고, 방금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온당히 계산서 그대로를 지불했다. 물론 여기에 정해진 가격을 가지고 깎는 것이 상식 밖의 일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오렌지 가격을 깎고 나서 더 깎았어도 됐을까 하고 아쉬워했던 내가 계속 떠올랐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걸까. 소가 없어서? 거리가 깨끗해서? 탐지기가 있어서? 인식하지 못했던 내가 가진 타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느끼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부끄러움과는 조금 다르고 실망감과는 조금 비슷한 그런 감정이었다. 난 그것의 정체에 대해 자세히 알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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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행자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에서 추천하는 카페에 왔다. 기대와는 달리 깔끔하고 모던한 인테리어의 카페였다. 우리나라에서 모던한 인테리어 카페에 온 것과 뭐가 다른가. 직원이 건넨 메뉴판에 한글로 신라면 이라고 적혀있었다. 아직 한국음식이 그리울 때는 아니었다. 와이파이로 혹시 지나쳤을 정보들을 탐색하고 있을 때 훤칠하고 멀끔하게 생긴 서버가 쟁반을 내 앞에 놓았다. 비염환자마냥 고개를 숙여 코로 김을 쐤다. 익숙한 냄새가 났다. 며칠 만에 처음으로 식욕이 일었다. 약간 싱겁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같이 나온 길쭉한 쌀로 지은 덜 끈적이는 밥과 레몬즙으로 식초를 대신한 단무지 역시 만족스러웠다. 카페 직원이 나를 의식했는지 한국노래가 공간을 메웠다. 묘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씩 싱거운 한국음식과 한국노랫말이 나를 이렇게나 만족시키다니. 호란의 그윽한 목소리를 들으며 그릇들을 모두 비운 후 나는 수첩과 펜을 꺼내 오늘 할 일들을 한 줄에 하나씩 적었다.

유심 만들기, 알리바바바지, 슬리퍼, 기차표 예약하기네 줄을 적고나니 더 이상 적을 것이 생각나질 않았다.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유를 부릴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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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 어릴 적 좁은 시장골목에서 엄마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 긴장했던 때가 떠올랐다. 크고 작은 조각들을 파는 할아버지, 다양한 브랜드의 옷을 걸어두고 파는 아저씨, 길을 돌아다니며 악기를 파는 청년, 옆을 수시로 지나는 릭샤왈라들이 말을 걸어왔다. 숙소 앞 로터리를 중심으로 조금씩 범위를 늘려 왔다가 갔다가 걷기를 반복했다. 오리엔탈리즘에 심취한 듯 수행자인양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거적을 두른 금발의 청년이 지나가는가 하면, 네댓 명의 어린 남자들이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며 내 옆을 지나치기도 했다. 그렇게 목적 없이 걷다가 문득 왜 이곳에 왔는지 명확히 하고 싶어졌다. 기억을 더듬어봤다. 가장 처음 인도에 가겠다고 생각한 것은 7년 전이었다. 그러니까 스물 둘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계기는 생각이 나지 않으나 그때의 기분은 기억이 났다. 배를 타면 무조건 비행기보다 돈이 덜 들것이라 생각했고, 수첩에 계획을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셀 수 없이 많은 바람들 중 하나의 씨앗이 심어졌다. 갑자기 툭 하고 싹이 트인 인도 여행. 그 계기는 그럴듯했다. 시험에서의 낙방. 수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떨어졌고, 떨어지는 중이다. 나는 시험에서의 실패에 대해 그들과 다른 대처를 하고 싶었다. 난 소수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다. 나의 선택, 내가 속한 집단, 나의 취향이 소수임을 확인할 때 내 희귀함이 인정받는 것 같았다. 그렇게 문득 떠오른 오래전의 바람. 머리 보다는 가슴이 시키기는 했으나, 가슴 깊숙이에서 우러나온 결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언제나 그랬듯 결정은 한 순간이었고, 열흘 후에 나는 배가 아닌 비행기로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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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을 켰다. 갑작스러운 밝음에 눈을 꼭 감고 주변을 손으로 훑었다. 손에 익숙한 것이 부딪혔다. 눈을 가늘게 떴다. 일곱 시다. 딱히 할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불을 껐다. 다시 누웠다. 수면을 시간낭비라고 여기는 나에게 다시 잠을 청하기란 괴로운 일이었다. 돌아누워서 카페 검색을 했다. 검색어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빠하르간지 식당, 빠간 식당, 빠하르간지 맛집, 여러 가지 조합들을 입력해서 글들을 탐독했다. 문이 닫혀있을 수도 있다는 불안에 식당후보를 두 개 정해서 가는 길을 숙지했다. 아직 식당이 열지 않았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에 빠하르간지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빠하르간지. 여행자의 거리라고 불리는 듯하다. 롤플레잉 게임에서 캐릭터가 처음 생성되는 장소랄까. 나에게는 초보존이나 스타팅 포인트 같은 이미지다. 델리에서 출발하는 대다수의 여행자들은 뉴델리역이 가까운 이곳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현지 유심카드에서부터 침낭 등 필요한 여러 가지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사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유의사항은 거의 모든 글들에 있었다. 오늘 할 일을 메모장에 적기 시작했다.

1. 유심 만들기 2. 적응하기

더 이상 쓸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둘 다 꼭 해야 할 일이기는 했다. 어물쩍 시간이 지나갔다. 두 달 전 지금쯤이면 독서실 옥상에서 두 번째 담배를 피우고 있을 시간인가. 담배를 꺼냈다. 처음 사본 면세 담배다. 지금쯤 한국은 담뱃값이 올랐겠구나. 귀국할 때 사갈 면세 담배를 마지막으로 금연을 시작해볼까 생각해본다. 화장실 변기에 앉는다. 고요한 중에 라이터를 켜고 불을 들이킨다. 작은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올라간다. 식당 좌표를 되새겨본다.

가슴까지 복대를 치켜 올리고 방문을 자물쇠로 잠금을 시작으로 인도의 첫 나들이가 시작되었다. 무언가 물을 끓이는 사람, 가게 문을 여는 사람들, 어젯밤에도 뛰어놀았을 뛰어노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좁은 골목의 끝에는 물을 샀던 튀김 빵집이 첫 튀김 빵을 건지고 있었다. 구면이라 그런지 괜히 인사라도 해볼까 싶었다. 물론 하지는 못했다. 어제는 몰랐다. 큰 길은 로터리라고 해야 할까. 그것과 비슷한 구조의 길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큰 길은 아니었다. 왕복 1.5차선 정도의 길이었으니까. 믹서 옆에 당근처럼 보이는 것들을 쌓아두고 있는 가게도 보였다. 아마 저게 진짜 생과일주스를 판다는, 게다가 저렴하다는 과일주스 가게인가보다. 하도 두리번거리며 걸었더니 뜨내기처럼 보였나보다. 2미터에 한 명씩 영어로, 한국말로 어디서 왔냐, 안녕하냐는 등의 말을 걸어왔다. 의연한 척 하고 싶었던 나는 대답은 하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첫 번째 식당 앞에 도착했다. 옥상에 위치한 식당이었다. 1층은 여행사 같았다. 다행히 아직 열지는 않아서 호객행위 없이 무사히 올라갈 수 있었다. 뭐랄까. 이국적이었다. 당연한가. 지붕을 경계로 테이블이 달랐다. 한 바퀴 둘러본 후 혼자 먹기 좋은 지붕 바깥 쪽 테이블에 앉으려 의자를 뺐다. 그리고 다시 넣었다. 의자가 젖어있었다. 지붕 안쪽의 한 테이블에 가방을 내려두고 직원이 건네는 메뉴판을 받았다. 아침메뉴가 있었다. “디스원 플리즈.” 수능 시험을 마지막으로 영어를 쓸 일이 없었지만 이런 표현이 몹시 유려하게 나오는 내가 대견했다. 선불인지 후불인지 몰라 지폐를 들고 카운터로 갔다. 먼저 낸다고 싫어하지는 않을 테니 돈을 내밀었다. 직원이 거스름돈을 셈하는 동안 뒤쪽에서 아주 반가운 글을 발견했다. wifi난 곧바로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가장 먼저 커피가 나왔다. 녹색 컵받침에 찻숟가락까지 갖춰있었다. 테이블에 놓여있는 설탕을 조금 넣은 후 저어 마셔봤다. 커피보다는 커피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좀 더 어울리는 그런 맛이었다. 이어서 하나의 접시와 하나의 컵이 왔다. 컵에는 오렌지주스, 접시에는 식사가 담겨있었다. 빵 한 조각과 감자볶음처럼 보이는 붉은색 한 무더기, 달걀프라이 두 개, 흰색부터 녹색까지 그러데이션을 이루는 마치 애호박을 잘라놓은 듯 한 무언가가 몇 조각 놓여있었다. 메뉴판을 다시 들여다봤다. 오렌지주스, 야채볶음, , 달걀, 아보카도였다. 이것이 아보카도구나. 몇 년 전, 호기롭게 마트에서 두리안을 사다가 쪼개서 한 입도 먹어보지 못한 채 버린 이후로 새로운 과일에는 도전을 하지 않던 나였다. 포크로 아보카도를 찍었다. 찍혔지만 올라오지 않았다. 익혀서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보카도는 찍는 것이 아니라 떠서 먹는 게 바른 방법인 듯 했다. 살짝 한 조각 떠서 입에 넣었다. 달지도 짜지도 않았다. 약간의 향과 눅진한 식감만이 있었다. 아무래도 난 열대과일과는 인연이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왼손엔 빵을, 오른손엔 포크를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무리 없이 식사를 마친 후 바깥 구경을 했다. 그렇게 긴장하고 걸었던 거리가 한눈에 보였다. 탁한 색 공기와 무채색의 건물들을 배경으로 노란색과 초록색의 오토릭샤와 택시들이 여름날의 매미처럼 경적을 울려대며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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