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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며칠 머물다보니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왈라라는 단어가 뒤에 붙으면 그 부분에 종사하는 직업을 뜻하는 말이 된다. 우리나라의 장이와 비슷한 느낌이다. 릭샤왈라와의 치열한 가격협상 끝에 코넛플레이스에 내렸다. 그리고 한 친구를 만났다. 그는 쪼그려 앉아서 구글맵을 열심히 보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유 자팡? , 아임 코리안. 그새 어느 정도는 거부감 없이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왜소한 몸짓에 로스팅 된 커피콩 정도의 짙은 갈색 피부를 가진 인도인 친구는 일본인 친구가 하나, 한국인 친구가 둘 있었다. 그 중 두 번째 한국인 친구는 나라고 했다. 왠지 엮이기 싫은 농도 짙은 붙임성에 난 알레그레토로 걷기 시작했고, 그는 나를 따라오며 여긴 무엇 하러 왔냐고 물었다. 데면데면하게 굴며 그냥 구경하러 왔다니까 자기가 싼 마켓을 안다고 따라오라고 했다. 덧붙여 그는 자신은 그냥 영어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좋으며, 돈을 달라고도, 뭘 사라고도 안한다고 했다. 어차피 목적 없이 구경 온 것인데 어디면 어떻겠냐는 마음에 그를 따라 나섰다. 그는 걸으며 짧은 힌디어 강의를 해줬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꺼져. 가장 쓸모 있는 세 가지 말을 전수받은 뒤 난 그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말았다. 선선한 날씨임에도 땀이 조금 나기 시작했다. 20분은 족히 걸은 것 같았고, 이미 코넛플레이스를 벗어난 지 한참이었다. 나의 힌디어 스승을 버리고 다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계속 그를 믿고 따라갈 것인가. 고민되었다. 잠시 시간을 벌고자 그에게 담배 피우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에 담배를 꺼내 한 개비 물고, 한 개비는 그에게 줬다. 그는 인도에는 이런 담배 안판다고, 향이 좋다고 했다. 한국 담배를 연신 칭찬하는 그에게 이거 일본 꺼야.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한 갑에서 나온 담배를 같이 피우니 우리는 더욱 돈독해져 있었다. 그가 나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었다. 나는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고 대답했고, 그는 취미가 크리켓이라고 했다. 힌디영화 본 게 있냐고 묻는 그에게 세 얼간이를 재밌게 봤다고 말하자, 자기도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갑자기 번뜩 떠오른 오랫동안 궁금해오던 것을 그에게 물었다. 왜 인도 영화에는 중간에 꼭 음악하고 춤이 나오는 건지. 그는 대부분 인도인이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좋은 영화는 좋은 춤과 음악이 나온단다. 세 얼간이에서 춤만 추면 진저리치며 얼른 장면을 넘겼던 나의 과거가 스쳤다. 거의 다왔다는 말을 한 세 번 정도 듣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베리 빅 마켓이라던 삼 층짜리 건물을 보았다. 담배도 나눠 피우고 힌디어도 가르쳐주던 그와의 유대감이 감소했다. 그를 보자 가게 앞에 있던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제자리를 잡았다. 그렇다. 나의 입장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라고 나에게 묻는 직원의 모습이 상상되어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친구를 불렀다. 아까 배운 '꺼져'가 입가에 맴돌았지만 간신히 참고 원래 계획대로 코넛플레이스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정색하는 나를 보고 살짝 얼굴이 굳은 친구는 굳이 나를 배웅하겠다며 나를 안내하려 했다. 왔던 길로 돌아가다가 갑자기 다른 길로 가기에 거기가 아니라 이쪽이라고 했더니 어설프게 '아 맞다.' 하는 전 친구를 보자 살짝 화가 났다. 마지막으로 담배 하나씩 나눠 피우고 '너는 네 일 해. 난 가서 혼자 구경할게.' 하고 헤어졌다. 혼자 돌아가는 길은 더욱 멀게 느껴졌다. 코넛플레이스에 드디어 돌아왔을 때, 어떤 아저씨 한 명이 다가왔다. 그리고 다짜고짜 프렌드라고 했다. 그 이후에 하는 말은 역시 전 친구와 똑같은 멘트였다. 방금 너랑 똑같은 말 하는 친구랑 이미 갔다 왔다고 했다. 왠지 웃겼다. 나는 웃었다. 그도 웃었다.

코넛플레이스. 사람들의 경험담을 종합하면 굉장한 번화가인 듯 했다. 이미 어둑해진 하늘에서 그곳만 밝았다. 내가 서울에서 본 그 하늘이었다. 많은 빛 때문에 별이 보이지 않는 하늘. 조금 걸으니 눈앞에는 거대한 건물들이 블록별로 줄지어있었다. 소가 없었다. 바닥은 깨끗했고, 사람들의 복장조차 전혀 달랐다. 개도 없었다. 내가 아는 브랜드, 모르는 브랜드가 간판을 반짝였다. 각종 패스트푸드가게들이 있었다. 딱히 뭔가를 살 생각도, 살 필요도 없었기에 쭉 걸었다. 그러다가 익숙하고 반가운 간판을 발견했다. 입구에서는 경비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금속 탐지기 비슷한 걸 들고 입장하는 사람들을 검색했다. 커피 마시러 가는 사람들한테 저게 뭐하는 짓이지 생각이 들었다. 난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한국에 비해 저렴한 가격이었다. 나라별로 스타벅스 컵을 사 모으는 친구가 떠올랐지만 이내 잊었다. 2층의 화장실은 내 숙소보다 깨끗했다. 남은 자리가 몇 개 되지 않아서 나는 서양 부부가 마주앉은 자리 옆에 앉았다. 교수라는 할아버지와 간단한 대화를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너무 빠르게 진행된 현지화 탓에 나는 이곳에서 가장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이었다. 직원이 부르는 주문서에 적은 내 닉네임을 듣고 커피를 받아왔다. 영수증을 보며 가계부 역할을 하는 메모장에 가격을 적었다. 오렌지 10킬로 가격이 넘었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빠하르간지에서는 1킬로그램에 30루피 달라는 오렌지를 20루피로 깎았고, 방금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온당히 계산서 그대로를 지불했다. 물론 여기에 정해진 가격을 가지고 깎는 것이 상식 밖의 일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오렌지 가격을 깎고 나서 더 깎았어도 됐을까 하고 아쉬워했던 내가 계속 떠올랐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걸까. 소가 없어서? 거리가 깨끗해서? 탐지기가 있어서? 인식하지 못했던 내가 가진 타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느끼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부끄러움과는 조금 다르고 실망감과는 조금 비슷한 그런 감정이었다. 난 그것의 정체에 대해 자세히 알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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