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짧글 2016. 5. 28. 01:04

 

  나는 책을 많이 읽었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다니던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읽지 않은 책이 없을 정도였다. 한 학년에 한 반 서른 명이 전부였던 작은 시골초등학교였다. 항상 무언가 읽고 있었다. 밥 먹을 때도, 화장실에서도, 심지어 등굣길에 걸어가며 책을 읽다가 구름사다리에 이마를 부딪친 적도 있었다. 내가 살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책을 사려면 버스를 타고 읍내에 나가야했다. 그 당시에도 나름 마일리지 시스템이 있었다. 책 한권을 사면 종이에 도장을 찍어서 손바닥만한 종이 한 면을 다 채우면 책 한 권을 공짜로 가질 수 있었다. 꽤 많은 책을 책을 공짜로 얻었을 때쯤, 친구가 엄청난 정보를 알려줬다. 도서 대여점에 가면 책을 빌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만화책, 소설책, 비디오까지. 이후로 난 책을 더 많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로 온라인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에 이천 원을 주고 PC방에 다녔다. 집에 와서는 모뎀으로 인터넷에 접속해서 게임을 했다. 글자만 있으면 무조건 읽어대던 전과는 달리 판타지 소설만 읽었다. 용과 마법과 몬스터.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책에 몇 쪽 썼던 것 같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내가 주인공이 되어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었다. 그쪽이 더 좋았다.

고등학생이 되니 게임을 할 방법이 없었다. 야자가 끝나면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다. 나는 무협지와 판타지 소설로 느린 시간에 채찍질을 했다. 물론 공부도 했다. 두 명의 친구와 함께 문학 동아리를 만들었다. 인원은 세 명이었으며, 졸업할 때까지 세 명이었고, 졸업 후에는 0명이었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독서도 졸업했다. 몰랐던 놀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당구도 배우고 화투도 배웠다. 철권 고수가 되기 위해 틈만 나면 오락실에 살았다. 고백을 했다가 실패했고, 담배도 피우게 됐다. 연애도 했고, 헤어짐도 겪었다. 선천적으로 언어유희를 좋아하던 나는 틈만 나면 짧은 문장들을 싸이월드 게시판에 적어두곤 했다.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는 어떤 균열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게 첫 균열은 첫 헤어짐이었다. 복잡했다. 어찌할 줄을 몰라서 가사를 썼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비트에 가사를 얹는 법을 배웠다. 녹음했다. 나름 재밌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그게 취미가 됐다. 짧지만 의미 있게, 그리고 각운을 맞춰 글을 쓰고 녹음을 한다. 멋진 경험이었다.

몇 년이 흘러 나는 신춘문예에 글을 보내기로 결심한다. 이유는 단순했다. 끝내주는 아이디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가 일찍 떨어지는 계절에 나는 매일 저녁 카페에 가서 글을 썼다. 단편소설이었다. 분량이 안 나와서 붙일 수 있는 미사여구를 다 가져다가 붙였고, 필요 없는 접속사들을 총동원했다. 분량을 겨우 맞추고는 뿌듯해하며 우편을 보냈다. 어느 신문사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물론 아직도 연락은 없다.

또다시 몇 년이 흘렀고, 난 노량진의 흔한 수험생이었다. 정확히 1231. 아침에 혼자 조조영화로 변호인을 봤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준통곡을 하고 눈 주위는 벌겋게 부은 채로 용산역에서 노량진역에 왔다. 그 날은 내가 정한 맘껏 쉬는 날이었다. 서점엘 갔다. 좋은 책 한 권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요량이었다. 매대에 누워있는 뻘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부터가 매력적이었다. ‘살인자의 기억법나는 책을 고를 때, 제목과 목차, 작가의 말만 읽어보고 고른다.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 나는 이 책을 고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의 말을 봤을 뿐인데 무언가 전율을 느꼈다. 그대로 옮긴다면 이렇다.

 

 

소설을 쓰는 것이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어린아이가 레고를 가지고 놀 듯이 한 세계를 내 맘대로 만들었다가 다시 부수는, 그런 재미난 놀이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중략) 소설가라는 존재는 의외로 자율성이 적다. 첫 문장을 쓰면 그 문장에 지배되고, 한 인물이 등장하면 그 인물을 따라야 한다. 소설이 끝에 도달하면 작가의 자율성은 0에 수렴한다. 마지막 문장은 앞에 써놓은 그 어떤 문장에도 위배되지 않을 문장이어야 한다. (후략)

 

 

카페에 가서 책을 폈다. 관용적 표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글을 너무나도 잘 썼다그 전에 책을 읽던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영화였다면 영상미가, 음악이었다면 연주가 끝내주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야기 외의 것에 아름다움과 흥미를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야 작가 이름을 봤다. 김영하. 사진도 있었다. 왠지 카페 사장님처럼 생긴 아저씨였다. 나는 그 날 이후로 몇 달에 걸쳐 김영하작가의 책을 모조리 사서 봤다. 도무지 읽히지 않는 산문집 한 권만 빼고(웃긴 점은 그 책의 이름은 읽다). 다양한 화자, 다양한 주제, 다양한 시점과 표현들을 보고 있자면 눈을 뗄 수 없었다. 질투가 났다. 나도 그렇게 잘 쓰고 싶었다.

 

 

 

이전처럼 몇 줄보다는 길지만 한 페이지가 될까 말까 하는 글들을 틈만 나면 썼다. 대부분 일기였지만 화자를 바꾸고, 시점을 3인칭으로 바꿨고, 추상화시켜서 사건을 아예 묻어두기도 했다. 자주 쓰다 보니 몇 가지 이야기들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뼈대를 만들고 나서도 번번이 실패했다. 긴 글을 쓸 수 없었다. 단거리 연습만 하다가 마라톤을 도전하는 느낌이랄까. 호흡을 조절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에세이를 쓰기로 했다. 마침 인도 여행을 다녀왔으니 주제는 적절했다. 100미터 달리기를 422번 끊어서 하면 풀코스 마라톤이니까. 이것이 나의 첫 글쓰기 미션이다.

벌써 첫 에피소드를 쓴 후로 한 달 정도 지났지만 반도 못 쓴 것 같다. 쓰고 싶은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많았다. 쓰고 나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지워버리기도 하고, 대충 쓰고 그냥 올려버리기도 했다. 조금 처지는 감이 있지만 써지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하랴.

휴대폰 메모장에 차곡차곡 자위하듯 혼자 써놓고 좋아하는 단계를 지나, 이제는 노출증 환자가 되어 벌거벗고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기왕이면 좋은 물건을 내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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