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국 짧글 2016. 5. 19. 01:43

- 미안해요. 남자친구랑 먹어야 될 것 같아요.
웃으며 그녀가 말했다. 한순간에 너무 많은 정보가 다가왔다. 그녀의 볼에는 빨갛게 피부 트러블이 생겼으며, 그녀는 핸드폰 케이스를 바꿨다. 방금 한 약속을 취소할 만큼 그녀에게 나의 우선순위는 하위권이며, 그녀는 남자친구가 생겼다. 남자친구가 생겼다.
- 아, 그래? 남자친구는 언제 생겼어?
병신.
- 한 달 좀 지난것 같아요.
왜 얘기 안했어? 아니, 얘기 할 필요가 없었겠군. 순간 내 표정이 얼마나 썩었을지 상상이 안됐다. 뭐라고 마무리 지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대화. 남편이 있던 것보단 낫잖아? 따위의 자기 개그는 먹히지 않았다.
정말 괜찮은 줄 알았다. 이어폰을 꽂았다. 빠른 드럼 비트에 심장박동이 묻혔다. 성도 이름도 나이도 생김새도 모르는 남자새끼한테 패배감을 느꼈다가, 이제 좀 선이 그어진건가 하는 시원함과 나 자신의 집착에 대한 해방감, 교묘하고 교활한 저 첫 대사에 대한 섭섭함이 뒤섞였다. 담배 연기 탓인지 식욕이 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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