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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는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운다. 네 발과 꼬리, 두 귀와 얼굴이 검은 바닐라 색의 암컷 샴이다. 여느 고양이가 그렇듯 항상 우아한 자세로 걷고 도도함을 잃지 않는다.
고양이의 이름은 이명. 분양받기 위해 처음 이명을 봤을때, 제이는 귀에서 삐-하는 소리를 느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작은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을때 제이의 다리 주위로 몸을 부비는 이명은 제이의 일상의 유일한 즐거움이 되었다.
고양이는 지능이 꽤나 높아서 사람말을 잘 알아듣는다고 한다. 단지 무시할뿐이라 반응을 안하는 것 뿐이라고. 제이는 이명을 길들이고 싶었다. 해서 간식으로 이것저것 유혹을 해보는 등 숱한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이명은 휙 돌아 관심을 끊고는 포기한 제이가 놓아둔 간식을 먹고는 했다.
제이의 일상이 바뀌었다. 매일 이명을 위한 간식과 장난감등을 찾았다. 제이의 작은 공간 벽면엔 붙박이 캣타워들이 가득했고 주말에 환기라도 시키려고 창문을 열면 수많은 고양이 털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온 집안을 부유했다. 작년에 중고 매물을 찾아 싼 값에 들여놓은 소파는 여기저기가 찢겨져 너덜거렸다. 이명의 놀잇감이었을 두루마리 휴지도 처참하게 찢겨져 널부러져있기 일쑤였다.
제이는 꾸준히 이명을 훈련시켰다. 훈련의 성과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제 겨우 명아-하고 부르면 갸옹 하고 대답하는 정도였다.
한 해에 세 번있는 시험날의 아침. 제이는 여느날의 아침처럼 이명을 불렀다. 하지만 이명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놀란 제이는 그 날 고사장 대신 동물 병원을 다녀왔다. 기운을 되찾은 이명은 우아하게 제이의 무릎에서 뛰어내려서 자신의 장소로 가버렸다. 제이는 서운함을 느꼈다. 제이가 명아-하고 열 번쯤 부르니 한 번 대답해주었다. 그 한 번의 대답에 제이의 서운한 마음이 녹아내렸다.
제이는 스마트폰의 사진첩을 연다. 이명과의 첫 만남부터 방금전까지의 사진을 찬찬히 살펴본다. 기분 좋은 얼굴을 한 제이는 말한다.
"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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