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글 2017. 3. 11. 19:59

  적당한 땅이 필요하다. 딱딱한 땅은 좋지 않다. 

  간혹 무가 나무 위에 열리는 열매로 알고 있는 서울사람들이 있다. 틀렸다. 무는 뿌리이다. 러시앤캐시의 무대리의 초록색 머리카락만 땅 위에 있고 나머지 흰 부분은 땅속에 묻혀있다. 이마정도까지 바깥으로 나왔을 때쯤 수확하면 된다. 

  물이 잘 흡수 되지 않는 땅에서 자란 무는 온갖 요상한 모양을 하게 된다. 'ㄱ'자 모양을 하기도 하고, 거대한 손바닥 모양으로 뻗어 있기도 하다. 다 살기 위해 그런거다. 물을 찾기 위해 무는 뿌리를 이쪽 저쪽 뻗어본다. 그래서 상품성이 있는 무는 물이 잘 흡수 되는 땅에서 자란 무이다. 강가 근처 모래땅이 좋다.

  여름이 끝나갈 때쯤, 무 씨앗을 심는다. 무 씨앗은 매우 작다. 그래서 적당히 뿌린다. 명절이 시작하기 전 쯤에 솎아준다. 일정 간격을 띄워주어야 무들의 나와바리가 확보된다. 경쟁해봐야 좋을게 없다. 둘 다 상품성은 없어진다. 솎아낸 덜자란 무는 뿌리보다는 잎이 더 크다. 고기를 넣고 함께 끓여 먹기도 한다. 무는 쓸 데가 많다. 가을이 되어 무가 다 자라면 무를 뽑는다. 기후에 따라 무의 크기가 다르다. 비가 적당히 많이 온 해에 어떤 무는 째깐한 어린애보다 무겁다. 

  수확된 무는 차에 실려 어딘가로 옮겨진다. 깊이는 오 미터, 가로 세로는 각각 십 미터 쯤 되는 구덩이이다. 포크레인이 집게로 무를 집어다 내려놓으면 사람들은 무를 가지런히 놓는다. 가지런히 놓지 않으면 무는 울퉁불퉁해지기 때문이다. 층층이 쌓이는 무 사이사이에 소금을 뿌린다. 염도는 17~19도 정도가 적당하다. 너무 짜면 원가가 많이 들고, 너무 싱거우면 무의 색깔이 어두워진다. 그렇게 무가 구덩이에 가득차면 그 위를 모래로 덮는다. 삼투압에 의해 그동안 열심히 머금었던 물이 스며 나온다. 그렇게 몇 달. 모래를 파헤치면 흰 무는 노랗게 변해있다. 절임무는 부대자루에 담긴다. 부대 하나에 대략 850 킬로그램 정도가 들어간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차를 타고 이동을 한다.

  무는 부대에서 뜯어져 나와 다시 물속에 잠긴다. 너무 짜기 때문이다. 그렇게 염도가 반의 반이 될 때까지 물 속에 조용히 있는다. 거대한 집게가 물속에 들어와 무를 한웅큼 집는다. 천천히 들어올려진 무는 기게로 떨어진다. 길쭉하게 생긴 거친돌이 돌아간다. 돌의 표면은 마치 이태리 타올 같다. 무는 그 돌들에게 깎인다. 조금이라도 물을 흡수하기 위해 자랐던 잔뿌리들은 더이상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정 시간 돌며 깨끗해진 무는 기게가 벌린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무를 집어 뿌리 끝을 칼로 자른다. 겨우 살아남은 잔뿌리들은 감자칼로 제거당한다. 두꺼운 녀석들은 똑같은 길이로 잘린다. 얇은 녀석들은 반으로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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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형 소비 짧글 2017. 3. 9. 21:56

  임승수 강사님의 자본론을 들었다. 한 번 들어보고 싶었다. 자본론. 

  강의 제목부터 야매로 듣는 자본론, 어찌 듣지 아니할 수 있을까. 가볍게 듣기 시작했고, 듣는 내내 잔잔한 데미지 같은 느낌이 있었다. 아직 강의는 절반 조금 넘게 들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지금 쓰고 있는 이유는 방금전 네이버에 인물검색을 하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원래 검색 목적은 저서들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가족정보에 배우자분이 파란색 이름으로 떴다.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강의를 듣다가 이런 사람과 결혼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기 때문. 눌렀더니 몹시 미인의 사진이 나왔다. 부럽다. 

  강의를 듣다가 메모장에 한 가지를 옮겨 적었다. 난 교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들은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붓듯이 슥 지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서 무언가를 적는 편이 아닌데, 적었다. 그래서 오늘은 이것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볼까 한다.

  메모장에 적힌 것은 '소유형 소비'와 '체험형 소비'. 소비를 두 가지로 나눈 것이다. 읽으면 느낌이 빡 오기 때문에 딱히 설명을 달지 않는다. 요즘 내가 여실히 느끼고 있는 점이기도 했기 때문에 정확한 명사를 적어두고 싶었다. 어디가서 아는 척 하기도 좋지 않은가.

  난 기억력이 안좋기로 (주변에서) 유명하다. 뭐,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원인 파악은 이미 했다. 주의집중력이 몹시 않좋다. 해서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는 부분은 애초에 장기기억으로 넘기지 않는다. 그런 내가 정확히 2년 전에 다녀온 인도 여행에 대해 꽤나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름 블로그에 에세이라고 쓰고 있기는 하지만 몇 달을 안쓰고 있다가 겨우 여행의 중반부 쯤 쓰고 있다. 어떤 장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쓰기 시작하면 기억이 되살아난다. '체험형 소비'의 힘이다. 언제든지 꺼내서 즐거울 수 있는 기억을 남길 수 있는 소비. 멋지지 않은가. 죽는날까지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은 내가 타던 차나 내가 살던 집이 아니다. 특별한 경험이다.

  나는 요즘 '소유형 소비'에 충실하다. 최근엔 내셔널지오그래픽 가방을 샀고, 맥북도 샀다. 이것 저것 사고 싶은 것들이 늘어간다. 놀러갈 시간이 없다. 아니, 없다고 느껴진다. 세계여행을 목표로 붓고 있는 적금 통장은 과연 제 구실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강사님의 말을 옮기자면 자본주의는 공산품의 시대이며, 사람들도 점점 공산품이 되어간다. 심한 꼰대 혐오자인 탓에 꼰대들의 말에는 개기고,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무리하게 쿨한 척하지만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공산품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아, 갑자기 짜증이...

  자본론을 다 듣고 나서 다시 써봐야겠다. 급 마무리 하자면, 체험형 소비를 지향하자.

조만간 소고기라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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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샀다. 짧글 2017. 3. 7. 21:40

1.  가방을 샀다. 지독한 선택장애는 크나큰 벽이었다. 기간은 2주일, 실제 검색시간은 10시간 정도 걸렸다. 고민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2. 평범한 모양은 싫었다. 비범한 모양을 할 수록 가격은 높아져만 갔다. 그 두 가지의 절충을 찾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3. 무턱대고 요상하게 생긴 싼 가방을 사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때 퀄리티는 어느정도 가격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4. 브랜드를 따지며 사는 것은 자본주의의 상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얄팍한 신념은 깨어졌다. 내 형편이 나아졌다는 이유로. 몇 가지 브랜드들을 비교하며 탈락시켰다. 특정 브랜드 제품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5. 나는 백팩을 찾고 있었다. 가방의 크기 역시 고려 대상이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가방의 가로, 세로, 높이를 재어 비교했다. 너무 작은 것은 싫었고, 너무 큰 것도 싫었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적당한 것으로 귀결된다. 

6. 색깔. 오행 상 나에게 적당한 색은 붉은 계열과 노란 계열 이었지만 도무지 소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무난한 것으로 선택하기로 했다.

7, 모양, 색깔, 가격, 질, 브랜드, 크기를 고려하며 가방을 찾는 과정은 너무 힘들었다. 

8. 그래도 샀다. 

9. 가방을 사고 나니까 가방에 상시 비치해야 할 것들을 사고 싶어졌다. 가령, 만능칼 이라던가, 거대한 용량의 보조배터리, 비상약 같은 것들.

10. 검색중이다. 몇 가지는 넣어두고 다니다보면 언젠간 쓸 수 있을 것 같다.

11. 여행을 조만간 가야겠다. 그러면 가방이 본연의 쓰임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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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글쓰기 짧글 2017. 3. 3. 22:26

  한 일 주일 전 정도에 강의를 하나 들었다. 강원국 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청와대에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을 지낸 분이었다. 많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듣는 재미가 있었다. 말하고, 쓰는 것을 권장했다. 보고, 듣고, 읽는 것은 이미 충분히 해왔으며, 그것은 단지 남의 지식을 입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몇 가지 글 쓰는 팁도 있었다.

 자신의 것을 표현하는 것의 중요함. 나아가 자신만의 것을 표현하는 것의 중요함을 생각하게 했다.

  갑자기 깨달았다. 머리속에 어휘가 많이 부족하다. 특히 유의어들을 알 필요가 있다. 내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글에 원하는 뉘앙스를 주어야 하는 것이 방법일꺼다. 책을 좀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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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만들기 짧글 2017. 1. 9. 22:03

수익모델은 아닌데 앱을 만들고 싶어져서 검색을 해봤더니 배울 것이 너무 많아보인다. 돈 주고 만들 정도의 재미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약간 멈칫. 그래서 보류중. 점점 커지면 하나 만들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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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집중력 짧글 2016. 11. 30. 23:46

주의집중력이 바닥인 탓에 마땅히 알아야 할 것들을 모른채 지나온 것들이 많았다.
가령, 한 학기에 시험을 중간, 기말고사 두 번을 본다는 사실을 고등학교때 문득 깨닳았으며, 대학교에 들어가서 친구들이 슬슬 신검을 받으러 가는걸 보면서 나도 군대에 가는구나 하고 알았다. 믿기지 않겠지만 '국방의 의무'는 알았지만 '내가 군대에 간다'는 모르는 상태였다.
'멀티태스킹 능력이 떨어진다' 정도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몇 가지 관심 외에 다른 정보들은 모조리 피상적인 상태로 남아있었다. 알지만 모르는 상태 말이다.
주입식, 혹은 암기식 교육의 폐해인 것인가 돌이켜보면 암기는 포기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냥 그런 인간이었던 것이다.
여러 가지에 관심을 두지 못하는 까닭으로 평소에는 몇 가지 외에는 다른 생각이 나질 않는다. 가끔 친구들 생각이 나서 생각해보면 몇 달 정도 연락을 안했던 것은 기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래가 끊기지 않는 친구들이 있다. 놀랍다. 고맙기도 하다. 하지만 따로 연락하지는 않는다. 딱히 할 말이 없다.
요즘의 관심사는 돈과 명리학이다. 관련된 책들을 읽고, 강의 비슷한 것도 본다. 돈에 대해 알고 싶어진 것이 처음이다. 당최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한 몇 달 더 공부를 한다면 야매로 사주도 봐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몇 달 더 공부를 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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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화 짧글 2016. 11. 26. 23:23

숙이가 알을 품기 시작했다. 사실 요 며칠간 보이질 않았었다. 이 동네 왠만한 고양이에게 당하지 않을 만한 체구를 가진 숙이가 어디 물려가거나 하지는 않았을거라고 생각했다. 약 오 일만에 나타난 숙이는 밥을 미친듯이 먹고는 사라졌다. 최초 발견지를 기준으로 샅샅히 수색한 결과 보일러실에서 숙이를 발견했다. 알을 품고 있었다. 손을 뻗었다. 내 손을 경계하며 꼬리를 바짝 쳐들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야, 그거 무정란이야...
사료랑 마시멜로우 조금을 숙이 앞에 놔뒀다.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됐다.
닭은 알을 품는동안 거의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품는 알을 가져가려고 하면 막 쪼아댄다고. 알을 아무리 품어봐야 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나로써는 안타까움만 생길 뿐이었다. 갈등이 찾아왔다. 알을 숨겨서 숙이를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줄 것인가, 아니면 계속 품게 놔둘 것인가. 일단은 보류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품는 알인데 그정도는 놔둬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 대부분은 불확실한 결과를 위해 노력한다. 성공을 꿈꾸며 사업을 시작하고, 합격을 꿈꾸며 공부를 하고, 대박을 꿈꾸며 로또를 사고, 부화를 꿈꾸며 알을 품는다. 지금 우리가 하는 노력의 결과가 한 눈에 뻔히 보이는 4차원 이상의 절대자를 상상해봤다. 그는 우리를 보며 어떤 생각, 또는 행동을 할까. 안타까울까, 아니면 자연스러운 일이니 아무렇지도 않을까, 알을 품게 놔둘 것인가, 알을 숨겨서 실패할 행동을 저지할 것인가.
숙이는 아마 계속 알을 낳고, 계속 알을 품을거다. 우리도 아마 계속 알을 낳고, 알을 품겠지.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수컷을 한 마리 데려다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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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법 짧글 2016. 10. 14. 01:29

 

당신의 왜 시간이 빨리 가는 줄 아세요? 우리의 뇌는 아주 효율적인 장치에요. 매일 똑같은, 혹은 비슷한 경험을 하면 우리는 그 경험들을 따로 기억 할 필요가 없어요. 돌이켜보자고요. 우리 어렸을 때는 하루가 길었고, 일주일이 길었잖아요. 하루하루가 익숙하지 않은 경험들이었던 거죠. 하지만 똑같은 패턴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루를 보내도 딱히 기억할 일들이 남아있지 않죠. , 하루하루 다른 경험들을 하는 사람의 시간과, 일주일을 통째로 복사해서 매주 붙여넣기를 해도 별다른 구분이 잘 안 되는 사람의 시간은 달라요.

 

시간이 다르다는 것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할게요. 당신의 상상이 필요해요. 지금부터 1시간에 해당되는 길이를 생각해보세요. 이를테면 당신은 1시간을 1미터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저는 1시간을 50센티미터라고 생각할게요. , 우리의 시간은 달라요. 헛소리라고 생각하나요? 아인슈타인이 한 이야기에요. 영화에서도 종종 나와요.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왔더니 다른 사람들은 늙어있죠. 과학적으로는 중력이며 시공간이며 여러 가지 요소들이 들어가겠지만 그것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단지 시간이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것만 알아두자고요.

 

그렇다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가상의 ''를 생각해 볼게요. 그는 매일 비슷한 일을 반복하는 직장인이에요. 어디에나 있을만한 그런 인물이죠. 그는 빨리 죽을거에요. 절대적인 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에게는 딱히 기억할 것이 없죠. 대신 시간이 빨리 지나가니 월급을 빨리 받겠네요. 연봉도 빨리 오를 거구요. 죽음 직전에 주마등이 지나간다고 하잖아요? 인생의 순간들을 보여준다는. 그의 마지막 순간에 스치는 주마등에서 수십 년분의 직장생활들은 몇 장면 되지 않을거에요. 그가 몇 살에 죽었는지는 몰라도 저는 그가 빨리 죽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오래살 수 있을까요? 매일 반복되는 일을 하는 직장을 때려치울까요? 그럴 수는 없죠. 생존과 관련된 문제니까요. 가장 편리한 방법은 다른 관점들로 하루를 관찰하는 거예요. 마치 어린아이처럼 말이에요. 조금 부지런하다면 일기를 쓰는 것도 좋아요. 어제와 다른 오늘을 구분해내서 적어두는 거죠. 일기를 매일 쓴다면 일 년이면 365개의 다른 하루들을 산거에요.

 

, 생각해보세요. 작년 한 해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얼마만큼의 기억이 남아있나요? 나머지 시간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거죠?

 

부정적인 것들에, 혹은 긍정적인 것들에 빠지지 말아요. 저는 무조건 긍정적인 것들만 생각하라고 강요하는 요즘의 트렌드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부정적인 것들을 억지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부정적인 것들을 회피하는 것 모두가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삶은 연속적인 힘겨움 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그 어려움들을 견디며 관찰하고 곱씹어봐야 해요. 오늘 하루도 잘 견뎠구나, 생각하면서 사는 거죠.

 

역시 적다보니 전개가 엉망이 됐어요. 글을 잘 쓰려면 마무리까지 잘 해야 될 텐데 아직 멀었어요.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쓸 이야기가 생각이 안날 때마다 이렇게 적었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했어요.

 

그냥 대충 사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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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이가 돌아왔다 짧글 2016. 10. 4. 23:52

숙이가 사라졌다. 막내동생의 증언에 의하면 상황은 이렇다. 늦은 밤에 푸드덕하는 소리와 함께 몇 번 창문에 부딛히는 소리가 들렸고, 동생이 밖으로 나갔을 때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대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때 자고 있었다. 동생은 나를 깨웠다. 숙이가 사라졌다고 했다. 나는 비몽사몽으로 나가서 숙이를 찾을 채비를 했다. 닭을 키우면서 알게 된 여러 가지 사실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닭은 밤에 시력이 몹시 나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깥쪽 조명을 모두 켰다. 동생과 나는 서로 다른 곳을 수색하면서 숙아 하고 소리냈다. 찾아낸 것이라고는 휴대폰 led램프로 마당 잔디밭에 떨어진 숙이의 깃털들 뿐이었다. 다급한 날개짓의 흔적들이었다. 집 주위를 샅샅히 돌고, 거미줄을 제거하면서 옥상까지도 찾아보았지만 숙이는 보이지 않았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다. 숙이가 혹시 놀라서 담을 넘어 옆 집으로 가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지만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제대로 찾지 않았다. 아빠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고, 엄마는 살짝 아쉬워 하는 듯 했다. 나는 슬펐다. 숙이가 없어졌다는 사실보다 익숙하게 동물을 떠나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더 슬펐다.
생각해보면 많은 동물들을 키웠고, 죽었다. 어렸을 때 처음으로 키웠던 개가 차에 살짝 치여서 집에 돌아왔을때는 울면서 밖에서 이불을 같이 덮고 자기도 했고, 키우던 고양이가 발정나서 집을 나간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때는 전단지를 만들어서 온동네에 뿌리고 다니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고양이에게 잡아 먹혔다면 그것은 자연의 이치이고, 옆 집에 넘어 갔다가 제 이름대로 백숙이 되더라도 옆 집 아저씨를 탓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다시 며칠이 지났다. 남아있는 아쉬움으로 나는 엄마에게 숙이는 다른 집에 가서도 원래 집을 잊어버리고 거기가 자기 집인 줄 알고 살거라고 했다. 엄마는 벌써 잡아먹혔을거라고 했다. 사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짧은 연을 추억하면서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리를 들었다.
그리고 오늘. 숙이가 돌아왔다. 나는 씻고 있었다. 양치를 하려 물을 껐는데 조용해진 욕실 창문 밖에서 조금은 쉬어있는 닭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입을 대충 헹궈내고 옷을 입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려갔다. 예상대로 담을 넘어갔다고 생각한 나는 대문을 나와 옆집으로 달렸다. 도중에 우리 집과 옆 집 사이의 담을 보았다. 우리 집 보일실쪽에 하얀 닭이 한 마리. 숙이였다. 나는 바로 반대로 달렸다. 마당을 지나 보일러실쪽 작은 곳에서 숙아 하고 불렀다. 평소처럼 박수를 쳤다. 그러자 숙이가 달려왔다. 닭이 도망갈 때에는 날개짓을 하기 때문에 잘 알 수 없지만, 반가워서 올 때에는 마치 공룡이 뛰는 것처럼 뒤뚱뒤뚱 뛰어 온다. 숙이는 뒤뚱뒤뚱 뛰어서 내 앞으로 왔다. 묘한 감동이 있었다. 숙이는 비록 보일러실에서 마당으로 돌아올 수 있는 지능은 없지만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다. 나는 숙이를 안았다. 모래주머니가 빵빵했다. 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지퍼백에 있던 사료를 줬다. 숙이는 오랜만에 먹는 영양식에 미친듯이 바닥을 쪼아댔다.
며칠만에 집에 돌아온 숙이는 모든 것을 새롭게 다시 경험했다. 다시 방충망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었고, 다시 몇 번을 부딪힌 후에야 포기했다. 간식으로 주던 마시멜로우도 잊었는지 한참 경계를 한 후에야 먹었다.
닭대가리. 관용어나 비유로써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팩트가 분명하다. 하지만 숙이는 나를 기억한다. 숙이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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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간단했다. 난 책을 보며 앉아있었고, 그녀는 일이 끝난 후 내 자리로 찾아왔다. 내 자리는 창가 바로 옆이었는데, 이미 직감한 그녀는 카운터를 거치지 않는 경로로 들어왔다. 인사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 마실거냐는 내 말은 거절당했다. 침묵속에서 몇 번 쯤 눈빛을 마주쳤다.
-잘 지냈어?
침묵을 깬 것은 그녀였다. 나는 생각나는대로 말을 뱉어 대답했다.
또다시 침묵. 이 상투적이고 전형적인 말은 도무지 말할 수 없었다. 멋진 말을 찾아내는 것도 우습지만, 남들 다 하는 말을 하는 것도 싫었다. 그녀가 카운터를 비켜서 들어온 순간 합의는 이미 끝난 것이었다. 또다시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정리를 거치지 않고 쏟아진 말들을 다시 정리하자면 '분위기상 우리는 서로 알고 있으니 말로 굳이 하지 않고 합의하자.' 정도 였을까.
그녀는 긍정했다. 그리고 더 할 말이 있냐고 물었다. 후드를 입고 싶다던가, 담배를 마음껏 피우고 싶다는 이야기들이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자신도 할 말이 없다며 그녀는 자리를 떴다.
나는 자리에 남아서 만났던 짧은 시간만큼이나 간결했던 헤어짐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역시 마지막까지 내 마음을 잘 알고있었다. 그리고 난 그녀가 중간중간 귀띰해주었던 헤어짐의 메뉴얼대로 움직였다. 이전의 연애에서 상대방이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도록 두었다는 것. 들었을 때는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담배가 생각나서 카페를 나왔다. 달그락거리는 얼음 사이의 물로 마른 목을 축이며 담배로 불을 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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