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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글에 해당되는 글 75건
- 2017.04.25 댓
- 2017.04.23 팟캐스트
- 2017.04.21 축시법
- 2017.04.16 갑자기 다짐
- 2017.04.12 쓰다보니 근황
- 2017.04.06 소리내어 읽을 것
- 2017.03.29 내가 꼰대가 되어간다는 증거
- 2017.03.29 여행
- 2017.03.15 숙이가 죽었다.
- 2017.03.12 야매로 끝내는 마르크스 자본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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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것이 최근에 확 눈에 밟혔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역시 요일별로 1~2개의 웹툰을 본다.
분량이 적거나 업로드 시간이 늦어지거나 하면 늘 싸움판이 벌어진다.
바로
'왜 분량(또는 업로드 시간)이 이따위냐' vs '공짜로 보면서 좀 닥쳐라'
의 문제이다.
난 세상에 순응적인 인간이라서
분량이 짧으면, '어쩔 수 없지'
업로드가 안되어있으면, '어쩔 수 없지'
하고 사태를 받아들인다.
이 싸움에서 나같은 인간들은 별 도움이 안된다.
이 싸움의 양쪽편 모두는 작가 또는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애정이 없다면 그냥 외면하고 안보면 끝이다.
그렇다면 작가를 욕하는 이들은 작품에 대한 과한 애정에 의해 그런 것이라고 판단하면 될 것인가. 모르겠다.
그렇다면 작가를 욕하는 이들을 욕하는 이들은 작가에 대한 애정에 의해 작가 실드를 쳐주는 것인가. 이 부분은 약간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겠다. 욕이 거슬려서 그들의 태도를 비난할 수 있겠다. 내가 가끔 봐온 바에 의하면 이들의 주장은 대부분 '공짜'이기 때문에 우리는 욕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별 생각 없이 이 주장에 동의를 해왔다. 나 역시 욕댓글을 보면 기분이 언짢아지며, 공짜이기 때문에 욕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자연스레 동의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다시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공짜인 컨텐츠에 욕할 자격이 없는가.
따로 써보니 욕할 자격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문장을 조금 수정하면 괜찮을 것 같아보인다.
우리는 공짜인 컨텐츠를 비판할 자격이 없는가.
있어보인다. 비판이야 할 수 있다. 비판을 정당화 하기위해 돈을 지불하지는 않는다. 비판과 욕을 비스무리한 것으로 본다면 우리는 웹툰에 욕쯤이야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심정적으로는 그것 가지고 욕까지 하는 것은 좀 마음에 걸린다.
한 가지 남은거다.
욕과 비판은 무엇이 다른가? 형식적인 차이인가 의도의 차이인가. 내가 쓰지 않은 글에 대하여 나는 판단 내릴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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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프로 팟캐스트 리스너라 부를만한 나. 하루 평균 여덟 시간은 듣는다. 꼭 챙겨 듣는 팟캐의 목록은 이렇다.
1. 탁피디의 여행수다
2. 김어준의 파파이스
3. 랄라스윗의 랄라디오
4. 씨네타운 나인틴
5. 썰전
6. 이이제이
7. 정치, 알아야 바꾼다
8.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9. [지대넓얕]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0. 청정구역
11.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12. 007아세아
13. 벙커1특강
14. [돈생시] 욱대표의 돈을 생각하는 시간
15. [안알남] 안물어봐도 알려주는 남얘기
16. 뫼비우스의 띠지
17. 강헌의 라디오 좌파 명리
순서는 선호순이 아니다. 여기 적어둔 팟캐는 전 에피소드를 다 들었다. 안알남 빼고. 안알남은 며칠 전부터 듣기 시작했는데 재미있어서 거의 종일 정주행중.
원래 적기 전에는 각각의 장단점을 적어볼까 했는데 목록이 너무 많다........
정치쪽 방송은 과감히 제외하고, 도움이 될만한 몇 개를 뽑자면
1.여행수다, 14.돈생시, 9,지대넓얕. 정도로 뽑고 싶다.
여행수다는 몇 년 동안 누적된 여행지들이 많다. 자신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행지 정도는 있을테니 한 번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게다가 듣다보면 정말 여러 가지 잡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다만 듣다보면 여행 충동이 너무 강하게 들다가 그들에 비하 자신의 삶을 초라하다고 비관할 수 있으니 조심.
돈생시는 최소한 알아야 할 경제적 교양을 쌓는다고 생각하고 들으면 좋을 것 같다. 난 이과 외길을 걸어온 문외한이라 모든게 새롭고 흥미로웠다. 1인 팟캐스트인데 지루하지 않다. 분량도 짧은 편이라서 부담도 없다. 개인적으로 진행자인 욱대표님이 좋다. 시즌2를 기다리고 있다.
지대넓얕은 재밌으면서 정말 다양한 분야를 들을 수 있다. 어디가서 아는 척 하기도 좋고, 관심분야가 있다면 입문에 충분히 흥미를 들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패널 네 명의 각각의 캐릭터도 분명하며 좋다.
원래 길게 쓰려고 했는데 모바일 작성이라 손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일부 직업군은 팟캐스트를 따로 시간내서 듣지 않아도 충분히 들을 수 있다. 대학생 시절 나꼼수를 시작으로 점점 범위가 넓어져서 거의 매일 들을거리가 있게 되었다. 사실 흥미 위주로 듣다보니 계속 들었을 뿐이고 자연스레 뭔가 많은 것들을 습득하게 되는 순기능을 체험했다. 그에 근거하여 적어본다.
책으로만 지식 전달이 되는 시대가 아니다. 간접적 지식 전달의 매체가 책뿐인 시대가 지나 지금은 듣는 것으로 지식을 전수 받을 수 있다. 영어 공부를 위해 책을 사면 함께 들어 있던 영어 테이프 들으며 공부를 하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 여러 영어 팟캐를 들어 보고 자신에게 맞는 진행자, 분위기 등등을 고려하여 고르면 된다. 흥미가 있는 방송은 계속 듣게 된다. 콩나물시루에 물 붓듯 듣다보면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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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유가 없다. 대신 에스트로겐이 뿜뿜하는지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어제는 일 끝나고 돌아온 여섯 시 쯤 바로 누워 잠들었고, 일어나보니 다섯 시 반이었다. 잠들면서 분명 생각했다. 잠깐 잤다가 씻고, 나가서 커피마시고 돌아와야지.
땅을 접어 한 걸음 걷고 다시 땅을 펴면 한 걸음으로 엄청난 거리를 갈 수 있다. 축지법의 원리인데, 나는 축시법을 펼치고 있다. 접힌 시간이 펴지는 순간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있다. 당연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이번 주말엔 쉴 수 있겠다. 고무적인 일이다.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것들이 사라지는 것 만큼 생긴다. 타로 카드를 샀다. 가방 한 켠에 한 번 섞은 덱이 굴러다닌다. 언젠간 공부 할 수 있겠지. 습관처럼 사둔 책들도 밀렸고, 읽고 싶은 책의 리딩 리스트는 알라딘 장바구니에 쌓여있다.
하나씩 하자. 시간을 접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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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고기를 끊어야겠다. 곡기가 아니라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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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써야지 하는 생각에 일단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 아직 주제가 없다. 그렇다. 난 주제도 모르는 놈이다.
쓸 것들을 생각하다보니 입이 쓰다. 그렇다. 커피를 마시고 있다. 혼자다.
여행을 갈 생각이다. 몰랐다. 직장인들이 왜 명절날 여행을 가는지. 쉴 수 있다고 확신이 드는 날이 없다. 그래서 나도 추석때 여행을 갈까한다. 여행지에 대한 고민이 참 많다.
내 1순위는 쿠바다. 공산주의 냄새가 사라지기 전에 가보고싶다. 먼 길을 가야 하지만 기간이 짧은 것이 걸린다. 쿠바까지 갔으면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서 아르헨티나에서 소고기라도 먹고 와야 하는 것 아닌가. 가성비를 따지지 않고 확 질러버리고 싶지만 난 그렇지 못한 놈이다. 철저히 자본주의에 찌들어서는 쿠바에 가고 싶단다. 이 어찌 모순적인가.
동생(21살, 해외무경험자)에게 혹시 같이 갈거냐고 물었다. 간단다. 내가 먼저 물어보고는 동생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쿠바가 얼마나 볼 것이 없으며,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는 열악한 나라인지. 따분하다고 불평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런데 이미 말을 꺼내놓았으니 뭔가 같이 해외 여행 한 번 쯤은 가야되지 않나 하는 강렬한 생각이 일었다. 동시에 쿠바 보다 가성비 높은 여러 나라들이 떠올랐다. 마음이 편해졌다. 값도 싸고 의미가 있는 대안이 생겨났기 때문.
나는 동생에게 선심쓰듯 가고 싶은 나라를 선택하라고 했다. 알겠다는 대답을 들은지 한 삼 주 지났지만 동생의 결정은 없었다. 아마 잊어버렸을거다. 사실 나도 방금 생각났다. 말도 안되게 바빴기 때문이다.
그렇다. 바쁘다. 최근 한 달 동안 하루 종일 쉰 날은 없었다. 그렇다고 딱히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는 않는다.
반프롤레탈리아의 삶은 고통스럽다. 노동의 강도는 스스로 높이고, 보상은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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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풍부한 그녀는 글을 잘 쓸 줄 알았다. 아니, 마치 그녀는 글을 다루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녀는 글을 완벽하게 가졌다. 그녀의 손짓 몇 번은 글을 완전히 원하는대로 바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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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업데이트 해야겠다. 지양해야 할 것들이기 때문이다.
1. '요즘 애들' 으로 시작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한 생각. "요즘 애들은 간접 경험들을 너무 빨리 접해서 대화의 내용이 너무 성숙하다,"
얼핏 보면 좋은 뜻으로 보이지만 그만큼의 경험 없이 표현 방법이 정형화되어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난 클리셰가 싫다. 애들은 안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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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있을때는 돈이 없었는데
돈이 있으니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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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이가 죽었다. 범인은 룽지다. 숙이는 누구이며, 룽지는 무엇인가. 이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나는 내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단순하게 숙이는 내가 키우던 닭이며, 룽지는 내가 키우던 개라는 사실만 늘어놓는다면 당신들은 이 사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확신한다. 거의 모든 대화에서 우리는 오해를 하면서 살아간다. 다만 허용 범위내의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내가 느낀 숙이와 그녀의 죽음에 대해 최대한 비슷하게 전달하고 싶다. 약간 긴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상실한 경험은 어떤 변화를 준다. 벌써 십 년이 되어가는 일이다. 누구나 겪는 일이 나에게도 생겼다. 생에 처음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것이다. 한 순간의 판단으로 나는 그녀에게 이별을 고했다. 한 두어달은 별 느낌이 없었다. 시간차를 두고 밀려오는 감정들에 나는 두 평이 채 되지 않는 좁은 고시원 방에서 글을 썼다. 글은 가사가 되었고, 인터넷 게시판에서 비트를 내려받았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고, 만 오천원 짜리 해드셋에 딸린 마이크로 노래를 녹음했다. 평소에 싸이월드 게시판에 운율을 맞춰 무언가 써두는 취미가 있었고, 얼마 전에 친구가 추천해 준 프로그램이 바탕화면에 깔려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내게는 밤마다 나가 소리지를 대나무 숲도 없었고, 내 말을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도 없었다. 거기에 뭔가 멋있어 보였다. 예술적인 것 같았다. 경제적이기도 했고. 그렇게 나는 첫 헤어짐의 여운으로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주인에게 떼써서 술집에서 그 노래를 틀었고, 그 술집에 전 여자친구가 있었던 것만 빼면 부끄러울 것 없는 과거다.
내게 숙이의 죽음은 첫 이별 만큼이나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당연할 일인지도 모른다. 친한 친구들에게 조차 숨기고 비밀연애를 했던 여자친구보다, 비록 사진 뿐이었지만 친구들에게 숙이를 더 많이 소개시켜줬고, 숨겨야 했던 그녀와 달리 숙이의 사진은 sns에도 올렸으니까. 이번엔 마이크도 없고, 그 프로그램도 없었다.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숙이와의 첫 만남은 2016년 4월 이다. 외갓집에서 돌아온 아빠는 슈크림 색깔의 병아리 두 마리를 가져왔다. 종이컵에 들어갈 만큼이나 작은 아이들이었다. 거의 모든 새끼 동물이 그러하듯 숙이와 숙이의 형제 역시 사랑스러웠다. 동시에 나는 짜증을 느꼈다. 처음이 아니었다. 아빠는 새끼 동물을 가져다 두고, 곧 흥미를 잃는다. 그러면 먹이를 주는 역할은 나와 엄마의 몫이었다. 그렇게 나는 개, 고양이, 고슴도치, 염소, 물고기, 거북이, 칠면조, 기러기 등을 키워 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일부러 이 작은 두 솜털뭉치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아버지를 둔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는 팁이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애정이 생긴다. 역시 이틀 후, 숙이의 형제가 죽었다. 아마도 아빠는 그 것을 집어다가 마당 어딘가에 버렸을 것이다. 작은 종이상자 안에서 잘게 빻은 쌀가루를 먹으며 며칠을 살아남은 솜털뭉치에게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백숙. 숙이는 백봉오골계다. 오골계라 함은 살과 뼈와 털이 모두 까만 닭을 가리킨다. 숙이는 살은 까맣지만 털과 깃털은 흰 색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숙이는 암컷이어서 벼슬 대신 모히칸 스타일의 털이 머리 위에 자랐다. 나의 이름 센스는 항상 이런 식이었지만 가족 누구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다. 숙이는 매번 밥을 챙겨주는 나를 엄마로 알고 있었다. 상자에서 꺼내어 방바닥에 두면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숙이가 내 주먹만큼 커졌을 때쯤, 항상 그랬듯 아빠는 흥미를 잃었다. 가끔 발이 병신이라며 부목을 대주면 휘어진 발가락이 정상적으로 돌아 올 수 있을 거라고 말했을뿐이다. 숙이는 빠르게 자랐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항상 상자를 뛰어올라 탈출했다. 숙이의 성장에 비례하여 종이상자도 점점 크고 높아졌다. 장마가 끝났을 때쯤 상자는 두 개를 이어 붙여서 높이가 1미터가 넘었다. 그쯤 나는 우리 집에서 숙이의 엄마로 공식 인정을 받고 있었으며, 숙이의 거취 역시 나의 권한이었다. 나는 숙이를 밖에 내보내기로 했다. 숙이의 솜털 대부분은 깃털들로 바뀌었고, 병아리 티를 벗고 어엿한 닭으로서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걱정이 됐다.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박스 안 닭이었다. 지난 몇 달 동안 매일 사료를 주고, 물을 갈아줬다. 바깥에서 목욕을 위한 모래를 퍼다가 상자 안에 넣어줬다. 그렇게 집 안에서만 살던 숙이가 과연 바깥의 환경에 잘 적응할 것인가 의문스러웠다. 바깥에는 길고양이도 있고, 가끔 동네 개가 마당에 들어오기도 한다. 모든 것이 새로울 것이고, 모든 것이 위협적일 것이었다. 최악의 상황은 역시 고양이에게 물려가는 것이었다. 특히 내가 잠재적 용의자로 꼽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덩치가 큰 흰검 조합의 고양인데, 단연코 우리 동네 고양이 세계의 우두머리였다. 배가 고프면 우리 집 개사료도 가리지 않고 훔쳐 먹는 포식자였다.
그렇지만 나는 숙이를 바깥으로 내보내기로 했다. 더이상 박스 안에서 키울 수 만은 없었다. 스스로 살 때가 된 것이다. 물론 사료도 주고, 물도 주겠지만.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것 역시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억지로 위험속으로 떠미는 것이 아니라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바뀌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집을 만들어 주리라 생각하고 나는 숙이를 마당으로 보냈다.
숙이에게 집을 만들어 주는데는 약 한 달의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숙이는 바깥생활에 적응했다. 날이 밝을 때에는 쉼없이 바닥을 쪼아댔고, 날이 어두워지면 에어컨 실외기에 올라가 거실 창으로 우리를 바라보다가 잠들었다. 처음 며칠인가는 에어컨 실외기와 거실 사이의 방충망을 인지하지 못했다. 숙이는 방충망으로 막혀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발디딜 공간이 많아지도록 실외기 위에 상자를 넓게 깔아주었고, 더러워지면 상자를 갈아주었다. 매일 아침에 일하러 갈 때 사료를 종이컵으로 한 컵 뿌려주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 역시 사료를 한 컵 뿌려주었다.
숙이의 식습관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 있다. 우선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 병아리 시절부터 숙이는 마시멜로우를 간식으로 먹었다. 천 오백원 짜리 마시멜로우 한 봉지면 두 달은 줄 수 있었다. 손으로 작게 뜯어서 주면 허겁지겁 먹어댔다. 놀러 올 때마다 그것을 봤던 세 살 짜리 조카는 마시멜로우를 보면 ‘숙이꺼’ 라며 먹지 않는다. 어쨌든 숙이는 아마도 마시멜로우를 간식으로 즐겨먹은 은하계 최초의 닭이 아니었을까.
숙이는 못된 테이블매너와 고르지 못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에 한 번에서 두 번정도 사료를 먹었고, 나머지 시간에는 쉼없이 바닥을 쪼아댔다. 모래를 먹기도 했고, 벌레를 잡아먹거나 풀을 뜯어먹었다. 동네 사료 가게에서는 양계장에서 쓸 법한 20kg 짜리 거대한 사료만 팔았다. 인터넷에서 사료를 구입했다. 옵션이랄까, 다양한 부식들을 함께 구입할 수 있었다. 가령 황토라던지, 빻은 굴껍데기 같은 거였다. 특히 달걀 노른자를 도대체 왜 닭에게 먹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적당해보이는 몇 가지 토핑을 추가해 주문해서 그것들이 도착하면 다함께 섞어서 지퍼백을 바깥에 두고 한 컵씩 줬다. 식판은 원래 딸기가 담겨있던 플라스틱 케이스의 평평한 뚜껑 부분이었다. 숙이는 늘 발로 사료를 흐트러트리고 옥수수만 골라먹었다. 밥상을 발로 차는 것 같아서 보기 언짢았다. 하지만 교육을 시키기에는 소통의 벽이 너무 높았다. 게다가 입맛은 까다로운 편이라서 마당 잔디밭-이라고 쓰고 풀밭이라 읽히는-에서도 아무 풀이나 먹지 않았다. 어느 한가한 주말에 숙이에게 이것저것 뜯어서 줘보면서 나는 어떤 풀이 맛있는 풀인지를 판단 할 수 있게 되었다. 숙이는 미나리를 특히 좋아했다.
내겐 열 살 어린 동생이 있다. 많은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친해져서 하극상을 밥먹듯이 일삼는 버릇 없는 아이다. 안타깝게도 어려서부터 봐온 사람이 나였다. 그래서 결국 정상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취향을 가지게 되었고, 덕분에 나와는 죽이 잘 맞는 편이다. 나는 동생과 숙이의 집을 그 주 주말에 기필코 만들어주겠노라고 몇 주간을 결의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멋진 닭집들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침실과 식당을 구분한 복층 형식과 불청객을 대비한 그물 울타리도 고려를 했다. 지속적인 게으름 사이에 예외적인 성실함이 찾아온 어느 주말이었다. 나는 가로 세로가 1.2미터 쯤 되는 크기의 나무 팔레트 네 개와 1톤정도의 쌀을 넣을 수 있는 거대한 자루를 가져왔다. 실천은 항상 계획보다 키가 낮았다. 바닥은 친환경적으로 그냥 잔디밭으로 하기로 했고, 입구 역시 조망을 위해 트여주었다. 결국 하이바를 바닥에 엎어둔 듯한 모양으로 나무 팔레트를 대충 못질해서 벽을 만들고, 바람을 막기 위해 바깥쪽을 자루로 마감을 했다. 겨울이 다가옴을 대비하여 집에 모아둔 뾱뾱이를 덧대주었다. 정체 모를 흉물스러운 구조물이 마당에 위치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뿌듯했다. 숙이를 두 손으로 안아서 경계가 애매한 집 안에 넣어줬다. 숙이는 나왔다. 우리는 다시 숙이를 집 안으로 넣어줬다. 앞으로 여기가 네 집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숙이는 다시 나왔다. 몇 번 반복하고 나서 우리는 아직 날이 밝아서 그러려니 했다. 대체로 그 나이때는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은 법이니까. 그 날 저녁 숙이는 실외기 위에서 잠을 잤다. 며칠이 지났다. 숙이는 새 집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바닥이 불편해서 그런가 싶어 정미소에서 얻어온 벼 껍데기를 깔아 바닥도 푹신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후엔 동네 고양이 한 마리가 자리를 잡고 바람을 피해 잠을 자고는 했다.
소통.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앞에서도 적었듯이 나는 어떤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완벽하게 그대로 전달되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편의상 우리는 사람이라는 같은 개념으로 묶인다. 하지만 실제로 완벽하게 같은 둘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같은 것을 받아들이고 다르게 느낀다. 비슷하게는 느낄 수 있다. 파란색을 떠올려보자. 완벽하게 똑같은 파란색을 떠올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혹은 맹인이 떠올린 파란색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지만 우리는 파란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언어의 문제이기도 하다. 언어는 대부분의 대상을 정확히 지칭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과 언어의 불안정성 때문에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숙이와의 소통은 무척 어려웠다. 우리는 같은 것을 비슷한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생물 적으로 다르고, 심지어는 언어도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항상 믿고 있던 것 하나가 있다. 동물이나 아직 사회화가 되지 않은 아기에게는 비언어적 감정 전달이 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소리를 지르거나 위협적인 동작을 전혀 취하지 않으면서도 동물에게 화를 내면 동물은 알아차린다. 반대로, 나는 숙이가 기분 좋을 때 하는 행동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집 안 종이박스에서 자랄때, 가끔 숙이를 꺼내 바닥에 놓아주면 날개를 퍼덕거리며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해방감과 신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가끔 숙이를 안고서 몸통을 쓰다듬어 주면서 '내가 너를 굉장히 아끼고 있다.’ 라고 표현 할 수 있을만한 감정을 전달했다.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였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숙이는 우리 가족 중에서 나를 가장 잘 따랐다. 내가 ‘숙아’ 하고 부르면 마당 구석에서 딴짓을 하고 있다가도 튼실한 다리로 전력질주를 해서 내 앞에 왔다. 딱히 별 볼일이 없어도 이렇게 숙이를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마치 영화 ‘쥬라기공원’에 나오는 티렉스가 달리는 것 마냥 한 발 한 발에 무게를 실어 쿵쿵쿵 하고 뛰어오는 모습이 귀여웠다. 게다가 몇 달간의 유대를 통해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약하지만 쌍방향적 소통이었다. 개나 고양이라면 가까이 다가와서 스킨십을 하기 마련이지만 숙이는 조금 달랐다. 부르면 다가와 내 손이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딴짓을 했다.
그 묘한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반려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거칠게 분류를 하자면 ‘개파’ 와 ‘고양이파’ 라고 분류를 할 수 있다. 개파는 개의 충성심과 사람과의 특유의 친화력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고양이파는 고양이 특유의 도도함, 고고함이랄까, 그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개나 고양이 각각의 개체들은 성격이 달라서 너무 거칠게 분류한 감이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파 보다는 고양이파에 가깝다. 너무 쉬운 관계는 싫다고 해야할까. 애를 써서 겨우 친해졌지만 고양이는 자기가 원할 때만 내게 다가온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닭은 고양이파들이 좋아할 만한 동물이다. 포유류에 비해 교감이 매우 힘들다는 점이 난이도를 높게 만든다. 특이한 것은 경험상 의외로 고슴도치가 닭보다 교감이 힘들었다. 고슴도치를 키웠을 적에 나는 고슴도치가 2차원 세계에 살고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게임 ‘팩맨’ 처럼 고슴도치는 그저 바닥에 떨어진 먹이를 먹으러 돌아다니기만 했다. 고양이와 고슴도치를 같이 키운 적도 있었다. 그 둘을 같이 놓아보면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고양이는 고슴도치를 경계하다가 툭툭 건들여 보려고 하고, 고슴도치는 고양이를 인식하지 못한채로 바닥을 그저 돌아다니기만 한다.
숙이의 실종. 많이 짧아진 가을의 막바지 쯤이었다. 막내동생의 증언에 의하면 상황은 이러했다. 늦은 밤에 푸드덕하는 소리와 함께 몇 번 창문에 무언가 부딛히는 소리가 들렸고, 동생이 밖으로 나갔을 때에는 누런 고양이 한 마리가 대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 때 자고 있었다. 동생은 나를 깨웠다. 숙이가 사라졌다고 했다. 나는 비몽사몽으로 옷을 챙겨입고 나가서 숙이를 찾을 채비를 했다. 숙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여러 가지 사실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닭은 밤에 시력이 몹시 나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닭은 밤에 쉽게 잡힌다. 바깥쪽 조명을 모두 켰다. 동생과 나는 서로 다른 곳을 수색하면서 숙아 하고 소리냈다. 찾아낸 것이라고는 휴대폰 led램프로 비친 마당 잔디밭에 떨어진 숙이의 깃털들 뿐이었다. 다급한 날개짓의 흔적들이었다. 집 주위를 샅샅히 돌고, 거미줄을 제거하면서 옥상까지 올라가 찾아보았지만 숙이는 보이지 않았고, 불러도 대답은 없었다.
며칠이 지났다. 숙이가 혹시 놀라서 담을 뛰어넘어 옆 집으로 가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지만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제대로 찾지 않았다. 아빠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고, 엄마는 살짝 아쉬워 하는 듯 했다. 슬펐다. 숙이가 없어졌다는 사실도 슬펐지만, 더 큰 슬픔은 익숙하게 동물을 떠나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여태까지 키운 많은 동물들과 이별을 했다. 초등학교때 처음으로 키웠던 개가 차에 살짝 치여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집에 돌아왔을때는 울면서 밖에서 이불을 같이 덮고 자기도 했고, 키우던 샴 고양이가 발정나서 집을 나간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때는 전단지를 만들어서 온동네에 뿌리고 다니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어느새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고양이에게 잡아 먹혔다면 그것은 자연의 이치이고, 옆 집에 넘어 갔다가 제 이름대로 백숙이 되더라도 옆 집 아저씨를 탓할 수 없다고. 세상을 점점 감정이입 없이 관조하게 되는 것 같았다.
또다시 며칠이 지났다. 남아있는 아쉬움으로 나는 엄마에게 숙이는 다른 집에 가서도 원래 집을 잊어버리고 거기가 자기 집인 줄 알고 살거라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엄마는 벌써 잡아먹혔을거라고 했다. 사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날 나는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리를 들었다.
다음날 숙이가 돌아왔다. 나는 씻고 있었다. 양치를 하려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 물을 껐는데 조용해진 욕실 창문 밖에서 조금은 쉬어있는 닭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입을 대충 헹궈내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려갔다. 욕실 창문 쪽은 보일러실로 가는 좁은 통로와 담이 있었다. 예상대로 담을 넘어갔다고 생각한 나는 대문을 나와 옆 집으로 달렸다. 옆 집 대문으로 달리며 우리 집과 옆 집 사이의 담을 보았다. 우리 집 보일실쪽에 하얀 것이 하나 보였다. 숙이였다. 나는 바로 방향을 바꿔 반대로 달렸다. 마당을 지나 보일러실쪽 작은 통로에서 숙아 하고 불렀다. 그러자 숙이가 달려왔다. 숙이는 특유의 공룡 걸음으로 뛰어서 내 앞으로 왔다. 묘한 감동이 있었다. 숙이는 비록 보일러실에서 마당으로 돌아올 수 있는 지능은 없지만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다. 나는 숙이를 안았다. 모래주머니가 빵빵했다. 굶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사료를 줬다. 숙이는 오랜만에 먹는 영양식에 미친듯이 바닥을 쪼아댔다.
며칠만에 집에 돌아온 숙이는 모든 것을 새롭게 다시 경험했다. 다시 방충망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었고, 다시 몇 번을 부딪힌 후에야 포기했다. 간식으로 주던 마시멜로우도 잊었는지 한참 경계를 한 후에야 먹었다.
숙이가 알을 낳았다. 실외기 위에 놓아둔 바람막이용 박스 안에는 메추리알과 일반 달걀의 중간 크기 정도 되어보이는 작은 알이 하나 놓여있었다. 나는 그 알을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엄마는 앞으로 계란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보였고, 왜이렇게 알이 작냐는 말을 덧붙였다. 기분이 묘했다. 우선, 숙이가 알을 낳을 수 있을 만큼 컸다는 사실에 묘한 만족감을 느꼈고, 두 번째로 앞으로 낳을 숙이의 알을 나는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과연 숙이에게 알은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봤지만 숙이는 알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첫 산란 이후 두어번 알을 발견한 이후 다시 알을 볼 수 없었다. 엄마는 추워지면 닭이 알을 잘 낳지 않는다고 했다.
숙이가 다시 없어졌을 때, 나는 몇 년만에 보일러실 문을 열어봤다. 등유를 넣는 기름통 위에 숙이가 앉아있었다. 온몸에 힘을 빼고 있는지 흰 찹쌀떡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 듣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앉은 채로 꼬리쪽 깃털만 들어올렸다. 분명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나는 숙이를 슬슬 건들면서 공격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두 손으로 들어올렸다. 그래도 물거나 저항하지는 않았다. 숙이를 잡은 두 손에 핫팩을 잡은 듯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아래는 알이 하나 있었다. 나는 숙이를 들어올리기 전 그대로 놓아두고는 집으로 갔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알렸다. 숙이가 알을 품고 있다고. 부모님은 알 계속 품으면 곯는다며 어서 가지고 오라고 했다. 숙이의 첫 모성애를 본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기름통 위에 방석과 담요를 깔아주고 그 위에 알을 두고 숙이를 다시 앉혀줬다. 앉아서 먹을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에 사료를 줬다. 보일러실 문을 다시 닫아주고 나왔다. 엄마는 어차피 알 까지도 않을텐데 뭣하러 그걸 그냥 두고 왔냐는 핀잔과 함께 알을 품는 동안 닭은 며칠이고 밥을 먹지도 않고 알을 품는다고 했다. 좀 더 생각을 해봐야했다.
숙이는 자신이 낳은 알이 무정란인지 모르고 있다. 너무 일찍 부모와 떨어진 탓에 알을 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 적은 없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숙이는 며칠간 밥도 먹지 않으면서 알을 품고 있었다. 결과는 모른채 말이다. 나는 작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올해는 합격할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노량진에서 한 해를 보냈다. 숙이가 작년의 나처럼 보였다. 내가 숙이의 알을 뺐는 행동은 지금의 내가 작년의 나에게 ‘너 어차피 시험 떨어질 거니까 공부 하지 마.’ 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아니, 오히려 좀 더 폭력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숙이와 작년의 나는 헛수고를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과연 하지 않았을까?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일까.
무신론자인 나는 어떤 신을 떠올렸다. 전지전능한, 따라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신이 존재한다면 하고 생각했다. 신은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 작년의 나를 그냥 놔두었다. 신의 뜻을 헤아리기는 힘들었다. 내가 들었던 여러 이야기에서 신들은 모두 시험을 내렸었다. 신은 뭔가 떠올리기에 조금 부담스러웠다. 나는 신 대신 4차원 이상의 어떤 존재를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표현을 할 때, 차원이 한 단계 높아질 때에 축이 하나 늘어난다고 표현을 한다. 우리는 가로, 세로, 높이의 세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살고 있는 3차원의 존재이다. 4차원을 이루는 축을 시간이라고 하는데, 4차원의 존재에게 시간은 우리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2차원의 존재에게 동전이란 앞면, 아니면 뒷면이다. 그들에게는 뒤집는다는 것은 인식을 넘는 범위의 일이다. 나아가 앞 면과 뒷 면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동전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 이들 존재와 다르게 우리가 동전의 앞면과 뒷면, 뒤집는다는 말의 의미를 알고 떠올릴 수 있듯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알 수 있는 존재를 생각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는 시간이라는 부분에서 국소적 전능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그 4차원적 능력의 범위를 확 좁혀보면 나는 적어도 숙이의 알이 무정란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알에 있어서는 결말을 알고 있는 존재였다. 부분적 전능함을 지닌 존재는 어떤 심리를 가지고 있을까 생각을 해봤다. 조망, 그는 시간을 조망하는 것이다. 숲과 나무의 비유를 많이들 하고는 한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은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숲을 우리의 인생, 나무를 하나 하나의 사건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는 숲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존재이며, 동시에 각각의 나무도 볼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런 존재에게 삶이란 스토리를 알고 있는 소설책의 디테일을 음미하는 느낌일까? 도대체 그런 존재는 어떤 삶을 살아가는 걸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한 가지 제한이 필요했다. 아니, 굳이 필요는 없지만 그래야 생각하기 수월할 것 같았다. 미래는 알 수 있어도, 그 미래의 사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감정이나 생각은 알 수 없다는 것. 그것을 제한하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동시에 그런 제한을 두는 순간 답은 정해졌다. 답은 ‘놔둔다’ 였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시간은 흘러간다. 한쪽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우리는 대체로 미래지향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삶을 산다. 그래야 뭔가 삶에 의미가 있어보인다. 과거는 지나갔고, 현재는 지나는 중이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는 미래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감옥보다 좁은 고시원에 살면서 1년이고, 2년이고 공부하며, 밥도 먹지 않으면서 알을 품는다. 그렇다면 공부하거나 알을 품는 행위는 합격이나 부화라는 결과를 수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행위일까? 괜히 힘을 빼는 것일까.
찹쌀떡같이 앉아서 알을 품는 숙이의 모습을 보며 어딘가에서 줏어들었던 니체의 영겁회귀를 떠올렸다.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을 80년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죽은 이후에는 그 똑같은 80년을 다시 산다는 것이다. 물론 기억은 리셋된 상태로 말이다. 다시 말하면, 한 번의 인생은 80년이지만 그것들은 계속 회귀하여 무한히 반복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기억 못할텐데 상관없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커다란 기쁨이나 절망의 순간이 매번 새롭게 반복될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쪽이다. 영겁회귀는 현재라는 한 점에 불과한 장면을 무한히 늘린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것이 실재라고 믿지는 않지만 자신의 삶을 조망해 볼 수 있는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분명 4차원의 존재에게는 과거, 현재와 미래의 모든 순간들을 동등한 가치로 여겨질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그 존재는 엄청나게 열정적이거나, 엄청나게 무기력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현재를 즐겁게 살아!’ 좋은 이야기이지만 잘 통하지 않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무한히 반복 될 것이라면 어떤가. 나는 그냥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물론 잘 되지는 않는다. 나는 알을 품는 숙이를 응원하기로 했다.
숙이의 산란 에피소드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며칠간 밥도 먹지 않고 알만 품는 숙이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내 선택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더 나은 선택은 없었을까 고민했다. 두 가지나 떠올랐다. 하나는 알을 바꿔치기 하는 것이었다. 유정란으로. 두 번째 방법은 우리집에 수탉을 데려다 놓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첫 번째 방법이 여러 가지 면에서 부담도 적고 쉽게 느껴졌다. 나는 동생과 함께 외갓집에 가서 달걀 몇 개를 가져왔다.
나와 동생은 들뜬 마음으로 보일러실 문을 열었다. 숙이는 꼬리를 올리고 경계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숙이를 감싸 들어올렸다. 숙이의 작은 알 대신 보통 달걀 크기의 알 세 개를 그 자리에 두고 다시 숙이를 내려놓았다. 숙이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다시 자리를 자세를 고쳐잡았다. 마침내 숙이가 찹쌀떡같은 자세를 안정적으로 취했고, 우리는 춥지 않도록 문을 다시 닫아주었다.
며칠 후에 은근한 기대를 가지며 다시 숙이를 찾아갔다. 숙이는 알들을 모두 뒤쪽으로 밀어내서 벽과 기름통 사이의 틈으로 밀어내버렸다. 틈이 좁아서 알들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품을 수 없을 위치에 나란히 걸려있었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집에 들어가 숙이가 자기 알들을 알고 있다고, 이것이 그 증거라고 떠들었다. 이유모를 뿌듯함이 생겼다. 휴대폰 플래시로 벽과 기름통 사이 틈을 비췄을 때, 십여개가 넘는 달걀들을 보았다. 그 순간 돈오점수처럼 깨달았다. 숙이의 무정란은 사람의 배란과 같은 것이었다. 그걸 알게 된 순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짜식, 다 컸구만.’ 하고 칭찬해주는 것으로 충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찹쌀떡같은 자세를 취하고 아무 것도 품지 않는 숙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숙이는 꼬리를 들어 올리며 여전히 경계 자세를 취했다.
숙이가 알이 없는 알품기를 그만 둔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나는 매일 아침에 보일러실 문을 열고 숙이를 꺼내서 밥을 줬고, 숙이는 식사를 해결하고는 다시 들어가 알이 없는 알품기를 계속했다. 이제 더 이상 눈이 오지 않겠다 싶을 때 쯤에 숙이는 보일러실로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여전히 잠은 집 대신에 실외기 위에서 잤다. 뭐랄까, 일상이 다시 시작된 듯한 느낌이었다. 하나 느껴진 변화는 사료를 쏟아주던 판이 유난히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평소보다 사료를 많이 먹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다. 참새들의 짓이었다.
이제 잠시 룽지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인 것 같다. 일관된 작명 센스. 내 성을 따라서 풀네임은 노룽지이다. 역시 외갓집에서 데리고 온, 당시 아빠 말에 의하면 ‘발모가지가 이렇게 두꺼운 것을 보면 황소만큼 자랄’ 누런 강아지였다. 품행이 몹시 방정맞은 편이다. 항상 에너지가 넘쳐서 가만히 서있을 때가 별로 없다. 나는 동물이 묶여있거나 갇혀 있는 것을 보면 굉장한 불편함이 느껴진다. 나의 제안으로 룽지는 며칠동안 목줄 없이 마당에서 지냈다. 처음 보는 신발들이 우리 집에 몇 개 쌓이면서 부터 나는 목줄을 메어 두는 데에 동의했다. 시간이 흘러 점점 큰 튼튼한 목줄로 바꿔주기를 몇 번. 아빠의 말대로 룽지가 황소만큼 자라지는 않았지만 꽤나 좋은 덩치를 가지게 되었다. 역시 자연스럽게 밥주는 담당은 내가 되었고, 룽지는 나만 보면 지나치게 날뛰었다. 밥을 줄 때면 거의 예외 없이 옷이 더러워졌다. 룽지에게 밥을 주는 일이 조금 부담스러웠고, 조금 게을러 졌으며, 가끔 거르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밥을 주는 날이 늘었다.
숙이가 죽었다. 아침이었다. 난 숙이 아침밥을 주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아빠가 들어와서 나를 불렀다. “숙이가 죽은 것 같다.” 평소에 숙이를 조만간 먹어야겠다는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아빠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하지만 아빠 표정을 보니 장난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표정이었다. 진지함과 약간의 서운함이 섞인 표정이랄까. 나는 현관에서 신발을 찾아 신었다. 문을 나서는 나에게 아빠는 개가 하얀 걸 먹고 있길래 가봤더니 숙이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아빠 말대로 룽지 앞에 하얀 것이 있었다. 가까이 갈수록 분명해졌다. 검붉은 목이 드러난 하얀 닭 한 마리가 누워있었다. 하얀 털 사이로 드러난 가느다란 목 부분에서는 김이 나고 있었다. 어쩔 줄 모르고 보고 있었다. 아빠는 목장갑을 끼고 닭을 들어올렸다. 검은 발, 발가락이 정상이 아니었다. 분명 숙이였다. 아빠는 룽지가 닿지 않을 만큼 떨어진 곳에 숙이를 툭 던졌다. 집에 들어왔다. 아침밥을 먹고, 일을 하러 집을 나섰다. 엄마와 함께 차를 탔다.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숙이 죽었어.”
엄마는 대답했다.
“죽었다니까 조금 서운하네.”
그날은 종일 잔잔한 슬픔이 있었다.
왜 룽지는 숙이를 죽였을까. 아니, 물었을까. 나는 몇 가지 장면을 떠올렸다.
장면 1. 숙이가 보일러실에서 알을 품던 기간동안 나는 거의 매일 아침에 보일러실에서 숙이를 꺼내 바닥에 플라스틱 판에 사료를 부어주었다. 그때마다 룽지는 평소보다 크게 짖어댔다. 몸을 완전 돌려 룽지를 바라보면 조용해졌다.
장면 2. 점심쯤에 마당에서 방뇨를 하고 있다가 룽지를 우연히 바라봤다. 룽지는 굉장히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나를 봤다. 이상한 점을 느꼈다. 룽지는 간간이 숙이가 있는 보일러실 쪽을 바라봤다.
장면 3. 어느날 룽지의 목줄이 풀어졌다. 룽지는 미친듯이 마당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녔다. 그러다가 멈춘 곳은 내가 숙이의 밥을 주던 플라스틱 판이었다. 룽지는 물기에 엉겨붙어 있던 숙이의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룽지의 질투심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나는 질투라는 감정을 ‘욕망의 반작용’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질투란 욕망의 반대편 방향으로 작용하는, 욕망과 크기가 같은 힘이다. 나는 카페 인테리어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거나, 소설을 읽었는데 정말 엄청나게 글을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강렬한 질투심이 생겨난다. 몇 번의 경험으로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질투의 정체를 그렇게 규정지었다. 몇 번인가는 질투심을 통해 몰랐던 나의 욕망을 발견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죽음. 누구나 필연적으로 그것과 가까워지고 있다. 삶의 끝과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식 바깥에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죽음을 피하고 싶었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음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 많은 궁금함을 가진다. 내가 죽음에 대해 적을 수 있는 것은 세 가지 정도다.
첫째, ‘아무 것도 없음’ 이다. 나는 아주 최근까지 이것을 확신해왔다.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계기는 알 수 없다. 가끔 죽음에 대해 떠올릴때면 아무 것도 없는 상태라는 것이 당연하며, 아주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스스로 판단했다.
여기에 힘을 보태는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생 중에 가장 생각이 나지 않는 친구를 떠올리려고 노력을 해본 적이 있었다. ‘무의식아, 도와줘.’ 이런 느낌이었는데, 나는 결국 그 친구를 떠올리지 못했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생각들은 대략 이랬다. 사실 그 친구가 십 년전에 외국으로 이민을 갔으며, 오 년전에 천재지변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면? 혹은, 그런 친구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내가 없는 사람을 떠올리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런 무가치한 생각들이 마구 생겨나고, 그 생각들의 종착지를 정리하면 이랬다. ‘내 인식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다.’ 내가 떠올리기 전까지 그 친구는 세상에 없었다. 나아가 내가 인식하지 않으면 이 세상도 없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았다. 나는 관념론자였다.
나는 오랫동안 이런 세상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죽음은 마땅히 단순한 ‘끝’ 이었다. 나의 죽음이자, 이 세계의 죽음. 전적으로 내 경험에 한하여 이런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은 편하지만 건조하다. 많은 것들의 가치는 평가 할 필요가 없으며, 세상에 대한 애정도 없다.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은 무한히 확대되며, 반대로 가치 없는 것들은 아주 작아진다.
의외로 나는 이렇게 사는 것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누구나 필요로 하는 인정욕구는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나의 인정 하나면 끝이 났다. 다른 사람과 치열하게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어리석어 보였다. 하지만 외로웠다. 그래서 항상 남들을 내 세계에 끌어들이고 싶어했다. 그들은 대게 흥미를 보이지만 이 곳에 들어서지는 않았다. 나는 항상 혼자였다. 이런 세계에 사는 사람에게는 삶이 외로운 것은 당연했다. 나는 그들의 세계를 공유하려 하지 않았다.
최근에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이 년전에 다녀온 인도 여행 때였다. 역시 인도여행은 깨달음을 주는 것인가? 아니다. 인도여행을 가려니 치안이 걱정됐다. 안전한 여행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겪은 여러 사건 사고들을 수집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한 인도여행은 그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길’ 이었다. 그래도 가고 싶었다. 생각의 첫 시작은 ‘그래, 그냥 죽지 뭐.’ 였다. 죽음조차 별 문제가 없게 느껴졌다. 나의 죽음은 이 세계의 끝이기도 했다. 불안, 걱정, 고통 등의 어떤 부정적인 것들의 끝이기도 했으니 오히려 삶의 목적지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죽음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었다.
두 번째, ‘천국과 지옥’ 이다. 우선 나는 종교가 없다. 유치원은 절에서 운영하는 곳을 다녔고, 할머니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교회에 나갔으며, 중학생 시절에 단 한 번 성당에 가봤다. 대학생때, 친구와 함께 원불교 교당에 가서 김장을 해 본 경험이 전부다. 그리고 구약성서에 기초한 여러 종교가 있다고 알고 있다. 잘 모르는 부분은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천국과 지옥을 조금 다르게 구성하여 이야기한다면 인생 시즌2 정도가 될 것 같다. 다만 시즌3가 없다. 지금 잘 살아두어야 좋은 곳에 간다. 그렇지 않는다면 좋지 못한 곳에 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영원히 지내는거다.
이 이야기 역시 끌린다. 억지로 ‘믿음’ 이라는 부분을 배제해보면 권선징악이라는 코드는 우리에게 너무나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야 이 사회가 건전하게 잘 돌아갈 것 아닌가. 사람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 혹은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선하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슬쩍 태클을 걸어본다. 무엇이 착한 것이며, 어떤 것이 나쁜 것인가. 과연 그 가치 판단은 가능할까? 대체로 보기에 좋아보이는 것은 있지만 그것이 선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절대적인 가치가 없는 이상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교에는 절대적인 가치가 있다. 그리고 나는 여기까지만 적어야겠다.
세 번째, ‘윤회’다. 이것 역시 불교의 관점이라고 생각된다. 죽으면 다시 태어난다. 전생에 지은 업에 따라 다른 세계에서 태어나는거다. 지옥같은 곳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천국같은 곳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 다만 그 생에서도 수명이 다하면 죽고, 그 업에 따라 다른 세계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나는 최근에 윤회가 마음에 들어왔다. 믿는다는 표현은 할 수 없겠다. 근거가 없으니까. 내 존재의 이유를 생각했었다. 그저 아무 의미 없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초라해졌다. 겨우 몇 십년 존재하다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더욱 안타까웠다. 그러다가 우연히 주워들었던 내용. 끝이 없는 윤회 속에서 업을 지고, 업에 따라서 다시 새로 생을 살고, 무수히 반복하다가 결국은 윤회의 고리를 끊으면 기나긴 존재가 마무리 된다. 멋지지 않은가. 기회도 있고, 끝도 있는 세계관은 내게 매우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따로 업을 쌓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다.
닭 한 마리 죽었는데 무슨 글을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썼냐고 생각할 수 있다. 내 마음이다. 숙이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그동안 마구 해오던 생각들을 정리했다. 일 년도 되지 않았던 짧은 숙이의 생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정말 다양한 생각들을 한 것 같다. 생각나는 것들을 마구 적으면서 마무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했다. 마무리는 숙이에게 건네는 말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숙아, 다음 생에는 꼭 행복한 것으로 태어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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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들었다. 뭐랄까. 이제 자본론 책을 읽으면 이해가 겁나 잘 될것같다. 막상 다 듣고 나니까 정작 후기로 쓰고 싶은 것은 마지막 보너스 강의의 내용이다. 그전에 총평을 해본다.
우선, 졸라 매력적이다. 임승수란 사람. 강의력, 내용, 인간미는 거의 만점이다. 그 특유의 전라도 말투도 좋다. 잉, 그져~ 하면서 이목을 집중시킨다. 강의 형식 역시 사실을 나열하기 보다 함께 같은 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미리 깔아둔다. 지루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 자제한 것처럼 보이는 간혹 등장하는 식은 가볍게 지나간다. 사실 한 강을 제외하고는 전부 음성으로만 들었다. 듣는 것 만으로도 식을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강의 제목에 적합한 설명 방식이었다. 직관적인 느낌만 있어도 되는 부분이니까.
강의를 듣고 가장 느낌이 강렬했던 부분은 마지막 강의였다. 생각보다 강의 내용을 일찍 소진하여 한 보너스 강의였다. 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 적당한 예시, 유물론적인 관점에서의 설명, 그리고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하루키의 글을 읽어줬다. 적어도 나에게는 엄청난 감동을 줬다. 내 의식 밖에서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에 화살이 콱 박혔다. 마지막 강의는 아마 내가 앞으로 쓸 글들에 어마어마한 차이를 줄 것 같다.
벙커1 1년치 결제를 했고, 목적으로 했던 강의를 다 보고 나서는 이것 저것 보고 있다. 임승수님의 강의 역시 강의 목록에 있어서 무심코 눌렀다가 보게 되었다. 편의점에서 산 비타500 뚜껑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병 더!' 같은 강의였다. 강의력은 인정. 스스로 자부하는 필력을 보기 위해 책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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