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 짧글 2016. 10. 4. 22:23

의외로 간단했다. 난 책을 보며 앉아있었고, 그녀는 일이 끝난 후 내 자리로 찾아왔다. 내 자리는 창가 바로 옆이었는데, 이미 직감한 그녀는 카운터를 거치지 않는 경로로 들어왔다. 인사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 마실거냐는 내 말은 거절당했다. 침묵속에서 몇 번 쯤 눈빛을 마주쳤다.
-잘 지냈어?
침묵을 깬 것은 그녀였다. 나는 생각나는대로 말을 뱉어 대답했다.
또다시 침묵. 이 상투적이고 전형적인 말은 도무지 말할 수 없었다. 멋진 말을 찾아내는 것도 우습지만, 남들 다 하는 말을 하는 것도 싫었다. 그녀가 카운터를 비켜서 들어온 순간 합의는 이미 끝난 것이었다. 또다시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정리를 거치지 않고 쏟아진 말들을 다시 정리하자면 '분위기상 우리는 서로 알고 있으니 말로 굳이 하지 않고 합의하자.' 정도 였을까.
그녀는 긍정했다. 그리고 더 할 말이 있냐고 물었다. 후드를 입고 싶다던가, 담배를 마음껏 피우고 싶다는 이야기들이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자신도 할 말이 없다며 그녀는 자리를 떴다.
나는 자리에 남아서 만났던 짧은 시간만큼이나 간결했던 헤어짐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역시 마지막까지 내 마음을 잘 알고있었다. 그리고 난 그녀가 중간중간 귀띰해주었던 헤어짐의 메뉴얼대로 움직였다. 이전의 연애에서 상대방이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도록 두었다는 것. 들었을 때는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담배가 생각나서 카페를 나왔다. 달그락거리는 얼음 사이의 물로 마른 목을 축이며 담배로 불을 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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