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4
당연하게 다르질링에는 차를 파는 곳이 많은 편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순대골목, 떡볶이거리처럼 빽빽한 밀도의 경쟁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광장 쪽에 두 개의 가게가 붙어 있고, 언덕 아래쪽에 두세 군데 정도 본 것이 전부다. 그래서 어디가 진짜 원조집인지 고민해야할 필요가 없었다. 차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있는 가게로 들어갔다. 넓지 않은 공간에 수많은 찻잎들이 각종 크기의 포장에 쌓여있거나, 밀폐된 유리병 안에 들어있었다. 다르질링, 아쌈 등 찻잎의 원산지와 수확 시기, 어떤 향이 나는지도 쓰여 있었다. 가게 한편에서는 몇 명의 사람들이 찻잎의 무게를 달아 포장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이거야말로 프랑스에서 생수를 떠오거나, 남태평양에서 참치를 직접 공수해오는 것이 아닌가. 비어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눈이 몇 번이나 마주쳤음에도 사람들은 내게 무신경했다. 직원에게 안내를 요구했다. 그제야 직원은 나에게 메뉴판을 건넸다. 녹차와 홍차, 특별한 향이 있는 차 등 메뉴가 너무나도 다양했다. 가격도 차이가 컸다. 가장 기본적인 다르질링에서 수확한 홍차를 주문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자연 그 자체였다. 봉우리와 조금 더 먼 봉우리, 그것보다 조금 더 먼 봉우리. 가방을 열어 수첩과 펜을 꺼냈다. 그리고 남은 예산과 선물에 쓸 수 있는 돈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내 앞에 투명한 받침이 내려왔고, 그 위로 투명한 찻잔에 담긴 홍차가 올려졌다. 이내 찻숟가락과 설탕이 담긴 통까지 모두 준비가 되었다. 태양과 가까운 곳에서 그 빛을 받아가며 자란 잎,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차를 생산해 온 전통까지. 찻잔에 담긴 것은 붉은색도, 녹색도, 노란색도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색깔로는 표현할 수 없는 더없이 맑아 보이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홍차 중 하나인 다르질링의 홍차, 잔을 들어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 목으로 넘겼다. 뭐랄까. 아무 느낌도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겐 차에 대한 경험이 없었음을. 기껏해야 티백에 담긴 현미녹차정도 마셔본 나는 이 묘한 향의 가치를 가늠할 수 없었다. 혹시 갑작스레 차에 눈을 뜨지 않을까 싶어서 아주 천천히 차를 음미했다. 찻잔의 차가 줄어들면서 선물 리스트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차를 고르기 시작했다. 스스로 책정한 예산이 넉넉하지 않아서 선택권이 그리 높지 않았다. 당연히 포장에 따라 차 가격이 달랐다. 껌의 내포장지로 쓰이는 재질과 유사한 종이의 거대한 버전이랄까, 그런 포장지에 끈으로 묶는 포장에 다르질링에서 재배된 차를 골랐다. 수확 시기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르다고 했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길 바라면서 저렴한 것을 골랐다. 직원이 그것들을 한 덩이마다 신문지로 다시 포장한 후 쇼핑백에 담아서 내게 건넸다.
숙소로 돌아와 배낭의 가장 깊숙한 곳에 쇼핑백을 집어넣었다. 처음으로 짐이 늘었다. 아직도 인도에 머무를 시간은 꽤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다시 돌아갈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아차렸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출발할 때부터, 그리고 여행 중에도 항상 생각했다. 그 날의 즐거움, 그 순간의 행복을 즐기자고. 하지만 또다시 짐을 늘리고 있었다. 이 무게가 다르질링에서 직접 사온 차를 건네는 내 모습이 아니라, 차를 받을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이길 바랐다.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