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 숙소 없이 바라나시에서 다음 기차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라씨를 마시고 가트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생각과는 다르게 짐이 너무 거추장스러웠다. 점점 줄어가던 배낭의 공간은 다르질링에서 선물로 산 찻잎으로 채워져있었다. 마음 편하게 시간을 보낼 곳을 찾으려 바라나시의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들을 수색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여리꾼들의 호객행위도 괜히 정겹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에 어설픈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친구 하나가 나를 불렀다. 흥미가 생겨서 그를 따라 가게로 들어갔다. 여러 가지 옷들과 캐시미어를 파는 곳이었다. 

  취미처럼 혼자 시간날 때마다 틈틈이 적어뒀던 것이 있다. 바로 선물리스트. 선물 줄 사람과 그 사람에게 어떤 선물을 줄 지 미리 적는 일은 참 재미 있는 일이었다. 그 리스트에는 알리바바바지를 줄 몇 명이 있었다. 나는 알리바바바지를 사기로 했다. 옷가게의 시스템은 이러했다. 가게 바닥은 침대 매트리스에 견줄 만 한 두꺼운 이불이 깔려 있는데, 이곳에 손님을 앉힌다. 그리고는 사방에 쌓여있는 옷들을 마구 펼치기 시작한다. 마음에 드는 옷이 나올때까지 펼치는거다. 그러면 손님은 점점 미안해지기 시작한다. 다시 옷들을 개어야 할 이 종업원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뭐라도 한 장 사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앉자마자 세 명이서 옷을 마구 꺼내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멈추고 나의 본심을 이야기했다. 기차 시간이 많이 남아서 시간 ㄷ보낼 곳이 필요하며, 나는 돈이 없으며, 가성비 높은 알리바바바지를 찾고 있다고. 옷은 천천히 고르고 대화나 하자고 했다. 그들은 내 말에 수긍했다.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만난 인도사람들은 예외없이 사진을 좋아했다. 보는 것도. 찍는 것도. 휴대폰 사진첩에 있는 사진들을 보면서 한국에 대해 이야기해줬고, 그들이 가보지 못한 다르질링도 보여줬다.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얼핏 보기엔 형이었지만 모두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손님이 오면 자리를 비켜서 옷을 꺼내는 것을 도왔다. 

  그곳에서 즐겁게 몇 시간 보낸 후에 나왔다. 알리바바바지 세 개와 캐시미어 숄 하나를 들고. 그리고 캐시미어는 가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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