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아, 제가 공부해야돼서."
그녀는 견과류 봉지와 수첩을 내게 건냈다. 이건 드시라면서 수첩을 받아들고 일어섰다. 뜨겁다. 온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자, 보자. 아니, 생각해보자. 그녀와 만난건 약 한 달 전쯤. 정정하겠다. 그녀'를' 만난것으로. 그녀는 독서실 옥상에서 참외를 깎아 먹고 있었다. 참외의 단내는 바람을 타고 내 콧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 날 난 백그라운드 스멜과 함께 숙련된 칼솜씨로 참외 껍질을 깎아내리는 그녀의 손을 계속 바라봤다.
다음날일거다. 그 날 역시 그녀는 참외를 먹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계속 바라봤다. 뭔가 피곤한듯한 눈이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비타민A를 섭취하려는 건가.
다음날부터 난 매일 그 시간쯤 옥상에 올라갔고, 그녀는 다음날부터 옥상에 올라오지 않았다.
난 먹이사슬 최하위의 피식자마냥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니기 시작했다. 몇 번의 마주침이 있었지만 둘 중 하나였다. 토끼처럼 도망가던지, 개구리처럼 굳던지.
마침내 그녀를 발견한 어느날, 아니 오늘. 나는 그녀에게 수첩과 아몬드와 호두, 피스타치오, 여튼 온갖 너트류와 말린 라즈베리가 들어있는 견과류 봉지를 건냈다. 그곳은 정숙해야 하는 독서실 자습실이었고, 수첩에는 [친해지고 싶어요! 전화번호좀 알려주세요!] 라고 적혀있었다.
칼 잘다루던 그녀는 딱잘라 말했다.
"아, 제가 공부해야돼서."
이곳은 정숙해야 하는 자습실이다.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