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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친구 두 명과 동창 여자애를 죽인듯했다. 그 꿈이 얼마나 생생했냐면 일어나는 순간에 이곳이 내 방 침대인지 교도소인지 구분해내야 할 정도였다. 꿈의 마지막 장면은 이랬다.
나는 시체를 유기해야 할 방법을 생각하며 본가 화장실에 들어와 변기에 앉았다. 집에 들어가 화장실에 가는 동안에 가족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이상함을 느꼈다. 화장실 안 텔레비전에서는 학생 세 명이 홧김에 동창생 여자를 죽였다는 뉴스가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점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 집 화장실엔 텔레비전이 없으며, 그들이 잡혔다면 내가 화장실에서 뉴스를 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꿈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갑자기 내 앞에 여자의 음부가 나타났고, 거기에서 강아지 거시기 같은 것(분명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이 튀어나오더니 꿈은 끝났다.
그야말로 개좆같은 꿈이다. 이런 꿈을 개꿈이라고 하나? 라는 생각에 피식. 담배꽁초를 휴지통에 넣고 다시 침대에 누워 기억을 되살렸다. 살인의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누구를 어떻게 죽였는지 궁금했다.
꿈은 깨어나는 순간 그 내용의 대부분을 상실한다. 나에겐 비단 꿈뿐만이 아니지만 말이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곰곰이 되새겨본다. 친구는 내게 말했었다. 너는 시체유기담당이야.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너희는? 뉴스에서처럼 홧김에 죽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입에서 한 명의 역할이 죽이는 것이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걔네집 앞마당에 묻을까? 따위를 지껄이며 낄낄거리며 웃었다. 무거운 것을 매달아서 강물에 버릴까 따위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체유기를 실제로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실패했으니 걸리지 않았을까.
몇 가지 기억들이 떠올랐다. 아니, 방금 만든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서울 어딘가 시가지에서 약국을 찾아 헤매고 있었는데 기시감을 느끼는 장면, 내가 어떤 남자에게 무슨 부탁을 하려고 집에 데리고 왔다가 그가 타고 온 전동보드를 구경만 한다고 한 후에 그냥 타버리니 기분 나빠하며 집을 나가버린 장면 등 살인사건과는 하등 관계없는 장면들뿐이었다.
거실에서 뉴스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지난 꿈을 기억해내는 것은 무리임을 직감했다. 꿈에 집중하려 이불속으로 머리를 더욱 파묻었지만 소용없었다. 의식하는 순간 내 청각의 주파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맞추어졌다. 뭐라고 하는 지는 전혀 분간이 되질 않았지만 그 말투로 볼 때 스포츠뉴스 같았다. 다시 기억을 해내려 집중을 해봤다. 입에서 나오는 더운 숨이 나갈 곳을 찾지 못하고 얼굴에 부딪혔다. 그 상태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깼다. 분명 뭔가 또 기억이 났었는데 잘 모르겠다. 기억이 났었는데 모르겠다는 말은 과연 의미가 있는 말인가.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기상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찬물에 얼굴을 비비면서 계속 꿈을 기억하려고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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